[트로트 르네상스] <64> 대중가요 속의 다리
2025-08-06
여기서 유수(流水)는 세월(歲月)이고 낙화(落花)는 인생(人生)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은 유정한데 세월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장(老莊)사상이 다분히 함축된 문구다. 그 무정한 서사와 유정한 서정의 간극에서 가요가 생성되는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사의 격랑에 휩쓸린 민중의 애환을 대변한 ‘강(江)’의 노래는 서사(敍事)이면서 서정(抒情)이었다. 두만강이 눈물에 젖고 대동강에 한이 서린 연유다. 전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한강이 그렇고 낙동강이 그랬다. 망국과 분단 그리고 전쟁과 실향이 파생한 눈물과 탄식이다. 전란의 상처를 추스르고 산업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1960년대 이후에는 강의 노래도 변화된 정취를 드러낸다.
서사적인 여운이 다소 희석되지만 서정적인 감성은 여전히 쓰린 물결로 여울져 흐른다. 숱한 곡절로 얼룩진 행로에서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눈물겨운 여인의 삶이 특히 그랬다. 풍상의 세월에 소진한 청춘과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에 대한 탄식이었다. 그 말 못할 사연들을 켜켜이 새겨온 가슴을 말없는 강물에 은유한 것이다. 이미자의 노래 ‘저 강은 알고 있다’가 그렇다.
‘비 오는 낙동강에 저녁 노을 짙어 지면, 흘려 보낸 내 청춘이 눈물 속에 떠오른다, 한많은 반평생의 눈보라를 안고서, 모질게 살아가는 이내 심정을, 저 강은 알고 있다’.
1965년 발표한 이 트로트 곡은 애달픈 노랫말과 선율이 수많은 한국인의 시린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이듬해 영화로도 나왔다. 파란 많은 세월과 기구한 여정을 노을이 짙어가는 낙동강에 띄우며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다.
강의 노래에는 저마다 고단한 삶을 이어온 서민 대중의 아픈 숨결이 흥건히 녹아있다. 산업화의 열풍이 불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강의 노래는 이촌향도의 서정을 품었다.
‘영산강 굽이도는 푸른 물결 다시 오건만, 똑딱선 서울 간 임 똑딱선 서울 간 임 기다리는 영산강 처녀, 못 믿을 세월 속에 안타까운 청춘만 가네, 길이 멀어 못 오시나 오기 싫어 아니 오시나, 아 푸른 물결 너는 알지 말을 해다오’.
‘수덕사의 여승’으로 스타덤에 오른 송춘희가 1968년에 부른 ‘영산강 처녀’는 이촌향도의 시대 이별의 정한을 함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망국민의 애환을 달래던 ‘목포의 눈물’에 등장하는 영산강과는 다른 물결이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 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1970년 김태희가 부른 ‘소양강 처녀’도 떠난 임을 그리는 애틋한 연정을 저무는 강물에 비췄다. 향토적 서정성이 짙은 ‘소양강 처녀’는 공전의 히트를 하며 지금도 춘천의 상징으로 남았다.
‘아~저녁 바람에 억새 울고, 강 기슭에 물새 울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버지의 뱃노래, 사랑 하나로 날 키우시고, 옛 노래 불러 날 재우셨던, 아~아버지 불러봐도 대답없이 흐르는 저 강은, 아버지의 강이여’.
1989년 영주 출신 가수 이태호가 내놓은 ‘아버지의 강’은 현실적인 특정한 강이 아니라 관념 속의 강이다. 스산한 강바람에 공명(共鳴)하는 억새의 속울음과 같은 아버지의 삶에 대한 아날로그적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다. 나훈아가 노랫말을 지은 ‘아버지의 강’이 스마트 시대에 부활한 것은 최근의 트로트 열풍 덕분이다. 유장한 강의 노래는 그렇게 가슴 먹먹한 사부곡(思父曲)으로 흐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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