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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18>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한양경제 2025-09-08 15:10:54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은 지리적 조건, 천연자원의 유무, 혹은 민족성과 문화적 특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경제학자 대런 애시모글루와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은 전혀 다른 답을 제시한다. 그들은 역사의 수많은 사례를 분석한 끝에 “국가의 흥망성쇠는 제도의 성격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제도가 다수를 포용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는가, 아니면 소수를 위한 수탈 구조를 고착화하는가가 국가의 운명을 갈라놓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번영하는 국가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를 갖춘다. 포용적 제도는 경제 활동의 기회를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열어주고, 정치권력이 견제와 균형 속에서 분산되도록 설계된다. 이는 개인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을 자극하며, 장기적 혁신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실패하는 국가는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에 의존한다. 착취적 제도는 권력과 부를 소수에게 집중시키고, 다수의 노력과 성과를 수탈하는 구조를 띤다. 이러한 체제는 단기적으로는 자원을 동원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결국은 혁신을 가로막고 내부 모순에 의해 붕괴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이 명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같은 지리적 조건을 가진 한반도 남북의 분단은 대표적인 사례다. 남한은 전쟁 이후 절대적 빈곤을 겪었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제도를 기반으로 산업화와 교육 확대를 추진했다.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를 마련하고 개인의 경제적 활동을 장려하는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제도가 구축되면서, 한국은 단기간에 세계가 주목한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반면 북한은 권력을 소수 집단에 집중시키는 착취적 체제를 유지했다. 자원과 인력을 통제적 방식으로 동원해 일정 기간 산업화를 추진했지만, 결국 경제적 혁신을 막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며 심각한 빈곤 상태에 빠졌다. 같은 민족이 같은 땅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은 것은 바로 제도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도의 중요성은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북미의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 비교적 포용적 제도를 이식받아 상공업의 발전과 정치적 자유를 확대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미국의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남미 식민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원자재 수탈에 초점을 맞추면서 권력과 부를 소수 지배층이 독점했다. 오늘날까지 남미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이러한 착취적 제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구소련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 아래 급격한 산업화를 달성했지만, 창의적 혁신이 차단되면서 결국 붕괴했다. 이는 착취적 제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기술 혁신, 인구 구조 변화,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여, 제도의 포용성이 위협받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동안의 고도성장은 교육의 기회 확대, 산업화 과정에서의 기업가 정신,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견제 와 균형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층의 사회적 이동 기회가 줄어드는 모습이 뚜렷하다.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와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는 여전히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정치의 극단적 대립은 제도의 합리적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한국이 지속적 번영을 누리려면 제도의 포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노동·복지 제도의 개혁을 통해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 정치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운영되며, 기업이 혁신과 경쟁 속에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교육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청년층이 재도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여 개인의 창의적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정치권은 극단적 대립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투명성 강화를 통한 신뢰의 구축은 포용적 정치 제도의 핵심 조건이다. 국가의 성공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며,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관련 논술·면접문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제도의 성격, 즉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의 차이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론적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제시문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을 논하시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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