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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69> 아파트 타령

한양경제 2025-09-10 10:44:41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 사회를 ‘아파트 공화국’에 비유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주거공간과 부동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빈부와 신분의 격차를 상징하는 사회적 욕망의 종착역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의 도심은 아파트 빌딩 숲으로 가득하면서도 그 안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정겨운 문화따위는 없다. 최초의 아파트 노래가 나온 것도 그런 시대의 반영이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 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띵동 띵동’하는 초인종 음향으로 시작하는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는 1980년대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건설 열풍과 함께 등장했다.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선 도시 에 사는 젊은이의 사랑과 고독을 노래한 것이다. 아파트 자체가 콘크리트의 차갑고 삭막한 질감을 드러내고 있듯이, 노래 또한 따뜻한 사랑의 온기보다는 차가운 이별의 냉기가 스며있다. 공허하고 서늘한 도시인의 감성이다.  

그로부터 40여 년. 아파트 재건축 시한에 상응하는 세월이 흐르면서 ‘아파트’ 노래도 여러 가수들에 의해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여수 밤바다’를 부른 장범준이 리메이크한 ‘아파트’에는 감미로운 발라드의 감성과 흥겨운 트로트의 정감이 어우러졌다.  

‘대한민국 좁은 땅에 아파트를 짓는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집값에, 영혼까지 끌어당겨 대출해서 샀는데, 이자 내고 버티다가 경매 넘어갔다네... 평수 따라 위치 따라 차별받는 이 세상... 아파트는 가만 있는데 우리 욕심만 들썩들썩... 경기부양 한다면서 아파트만 짓는데, 넘쳐나는 미분양에 빈집들만 늘어가... 언제 사고 언제 팔고 부동산만 보다가, 흘러가는 세월 앞에 늙어가는 내 모습...’ 

싱어송라이터 김민진이 재건축한 ‘아파트’는 온 국민이 아파트 때문에 울고 웃는 아파트공화국의 모순적인 현실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노래는 판소리 가락 한 소절로 시작해 금세 힙합 리듬으로 연결된다. 중독성 있는 국악 멜로디와 후렴구 같은 ‘아파트 아파트~’가 반복되며 이른바 트로트의 ‘뽕끼’ 마저 출렁거린다. 가사 또한 아파트가 희로애락의 중심인 우리의 현실을 의미심장하면서도 코믹하게 전달한다. 참신하고 기발한 노래의 재건축이다. 가사가 길기는 하지만 가락이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다. 

‘아파트 아파트~’를 연호하는 것은 그룹 블랙핑크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APT)’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재건축한 ‘아파트’는 발매와 동시에 스포티파이 글로벌과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를 휩쓸었다. 더구나 K팝 여성 가수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사는 영어 표현이 많다. 하지만 사랑과 이별의 아픔과 고독한 아파트의 이미지는 윤수일의 감성을 계승했다.  

대한민국 ‘아파트’ 노래의 국제화는 감동적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실제 모습은 외화내빈이 아닐지. 물질적 풍요 속의 정신적 빈곤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삶의 공간이 되려면 아파트에 따뜻한 온기가 살아나야 할 것이다. 익명적 주거공간과 영혼없는 도시문화를 개선한 아파트의 국제화다. 노래처럼 세계인이 주목하는 명실상부한 아파트 건설은 요원한 것인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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