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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70>월야유정(月夜有情) ①

한양경제 2025-09-17 10:41:41
달은 밝다. 달은 둥글다. 광명(光明)이요 원융(圓融)이다. 
하지만 명암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태양과는 다르다. 구별하는 빛이 아닌 화합하고 포용하는 신비와 여운의 빛이다. 어둠과도 공존하는 달빛은 그래서 은은하고 부드럽다. 자식의 그늘까지도 감싸안는 모성(母性)과도 같은 것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의 상징이면서 이지러짐과 다시 차오름이 반복되는 결영(缺盈)의 속성도 지니고 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달은 한글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요인 ‘정읍사’(井邑詞)에 등장하며 장구한 우리 문학사 최고의 소재이자 주제로 군림해왔다.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첫 모습을 보인 달은 신라 향가 ‘원왕생가’와 ‘찬기파랑가’ 등을 밝히다가, 가사(歌辭) 문학과 한시(漢詩)를 거쳐 시조(時調)문학에 이르러서는 도도한 물결을 이뤘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긴 여운을 드리우며 한국 문학사를 관류해왔다. 정읍사에서 달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었다. 그리움과 정(情)이 얽힌 따스한 빛이었다. 백제 시대에 이미 정서적 공감의 대상이요, 서정적 감정이입의 그릇으로 역할을 한 것이다. 신라 향가에서 달은 심미적인 서정성과 종교적인 신비성으로 승화되며 무상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달이 없으면 문학이 없었고, 달이 없으면 가요가 없었다. 달은 문학과 가요에서 널리 공유해온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문화 콘텐츠다. 달은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적 감수성의 원천이었다. 달은 세상만사를 비춘다. 달빛에 젖지 않는 게 없다. 하지만 보름달인지 그믐달인지에 따라 그 정서적 강약과 농담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계절에 따라 달빛이 지닌 감성에도 차이가 있었다. 

1972년 신민요 가수 김부자가 부른 ‘달타령’은 조선 후기 실학자 정학유가 지은 월령체 가사인 ‘농가월령가’의 대중가요적 변주이다. 일년 열두 가지 달의 모습을 한국적인 정서와 풍속에 어울리도록 재미있게 표현한 곡이다. 정월에 뜨는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이고, 이월에 뜨는 달은 동동주를 먹는 달이다. 삼월에 뜨는 달은 처녀 가슴을 태우는 달이고, 사월에 뜨는 달은 석가모니 탄생한 달이다.

오월에 뜨는 달은 단오 그네 뛰는 달이고, 유월에 뜨는 달은 유두밀떡 먹는 달이다. 칠월에 뜨는 달은 견우 직녀가 만나는 달이고, 팔월에 뜨는 달은 강강술래 뛰는 달이다. 구월에 뜨는 달은 풍년가를 부르는 달이고, 시월에 뜨는 달은 문풍지를 바르는 달이다. 십일월에 뜨는 달은 동지팥죽을 먹는 달이고, 십이월에 뜨는 달은 임 그리워 뜨는 달이다. 지금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민가요다.  

‘강남달이 밝아서 임이 놀던 곳’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려’ ‘촉석루에 달빛만 나무기둥을 얼싸안고’… 

일제강점기의 가요인 ‘강남달’ ‘황성옛터’ ‘짝사랑’ ‘꿈꾸는 백마강’ ‘진주라 천리길‘ 등에 등장하는 달은 모두 가을빛이 완연하다. 망국과 실향과 실연이라는 시대정서의 반영일 것이다. 

농경민족인 한국인의 존재양식은 초생달에서 보름달로 차올랐다가 그믐달로 이지러지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주기적인 속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적 심미적 체험 속에 자리한 달의 서정은 시와 글과 그림과 노래와 춤의 주제와 소재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달은 문화예술적 감성의 원천이면서 철학의 요람이자 종교의 모태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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