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임명식’이 뜻하는 것
2025-08-25
이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머리글자를 딴 일종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이 말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예부터 전해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는 아니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서구 진영의 공급망에 편입되면서 많은 서방의 국가와 기업들이 공산국가인 중국에서 새로운 이윤의 기회를 찾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다. 따라서 ‘안미경중’은 안보는 패권 국가인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적 실리는 개혁개방으로 기회가 많은 중국에서 얻겠다는 실용주의적인 자세 또는 정책을 뜻한다.
미국은 본래 공산화한 중국을 적대했다. 그러나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하면서 소련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소련과 갈등 관계에 있던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호응해 1979년 중공과 정식으로 수교하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촉진했다. 미국은 심지어 2001년에는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킴으로써 중국을 완전한 서구의 공급망에 편입시켰다.
그래서 서방의 주요 나라와 기업들은 인건비가 싸고 시장이 거대한 중국에서 큰 수익창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너나나도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중국에 공장을 짓는 등으로 중국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싸게 생산된 제품은 중국과 세계 시장에 과거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팔리고 따라서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중국대로 세계의 공장이 되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됐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경제발전으로 엄청난 부를 쌓게 되었고 그 부를 이용해 군사력도 키울 수 있게 됐다. 특히, 2000년대부터는 항공모함 전단과 해군력을 빠르가 증가시켜 현재는 적어도 함정 수에서는 미국을 능가하게 됐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면서부터 조만간 미국의 경제력도 능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 중국은 개혁개방 시절의 중국 지도자였던 등소평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다)’의 당부를 무시하고, 2004년에는 ‘유소작위(有所作爲: 해야 할 일은 한다)’를 표방하면서 국제정치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시진핑이 집권한 2012년에는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2014년에는 세계전략의 하나로 전세계를 육로와 바다로 연결하려는 ‘일대일로(一帶一路)’구상을, 2015년에는 2025년까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면서 세계 최강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9단선(九段線)’으로 지도에 표시만 했던 남지나해를 그곳의 여러 암초들에 시멘트를 부어 비행장을 짓고 군대를 주둔시켜 그 90%에 대해 실제적인 영해권을 주장하며 필리핀, 베트남 등 이 지역 국가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황해에도 동경 124도의 경도를 경계로 황해의 70%가 중국에 속하고 30%만 한국에 속하도록 선을 그어 한국의 선박이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 해상 방어와 해군력 확대를 위해 설정한 가상의 해상 경계선인 ‘도련선(島鏈善)’을 차례로 중국 근해에서 태평향 한 가운데를 있는 선까지 그 범위를 넓힌 3개를 그어서 서태평양에서 중국의 해상 영향력을 확장하려 한다. 이처럼 중국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2009-2017) 때부터 중국을 경계하고 소극적으로나마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면서 노골적으로 견제하면서 관세 전쟁을 일으켰다. 동시에 중국의 통신회사 화웨이를 비롯한 안보와 관련이 있는 업체들의 실명을 거론하여 서방진영에게 거래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중국 견제를 바이든 대통령도 계승했고, 2024년 대통령에 재선된 트럼프는 중국을 더욱 옥죄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에게 중국은 협력과 상생의 대상에서 철저한 견제와 적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로 미국의 동맹국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서방국도 함부로 안미경중을 노골적으로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와 태평양에서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기에 한국에게는 더욱더 안미경중이 용납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현실을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워싱턴 DC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초청 강연을 마친 뒤 존 햄리 소장과의 대담에서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 실익은 다른 곳에서 취한다는 의문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하게 말하면 봉쇄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자유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 봉쇄의 방향으로 가면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의 경우)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제껏 한국을 비롯해 서방 국가들이 비명시적으로 유지해왔던 안미경중이라는 실용주의 정책은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대결적인 국제정세의 변화로 현실성이 사라졌다. 더구나 중국이 그간 보여 온 전랑외교(戰狼外交) 또는 강압적인 대외 정책, 우리 역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왜곡, 김치와 한복 등 우리 문화를 자기 것이라는 억지 등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비롯한 선린관계가 바람직한지를, 심지어는 가능한지를, 의심케 한다.
더구나 미국의 대중국 견제 또는 중국 봉쇄가 더욱더 강도 높게 행해지면서 자유진영의 어떤 나라도 중국을 더는 주요 경제적 파트너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야말로 안미경중이라는 실용적인 태도를 더 이상 취할 수 없다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이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한국은 안보도 경제도 미국을 파트너로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노골적으로 시작한 트럼트 1기 행정부 때부터 안미경중은 현실적으로 불가해진 정책이었다. 불가한 것에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다. 오히려 이 기회를 활용해 한국은 방위산업을 포함한 제조업과 군사력에서 강국의 위상으로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산업에서의 협력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자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전략적인 포괄적 한미관계의 일단을 이재명-트럼프 정상회담에서 한국 측은 ‘마스가(MASGA: 미국의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제시했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와 이차전지를 비롯한 주요 제조업의 막대한 미국 직접투자를 실천해왔다.
그러니 미국도 관세협상에서 보인 터무니없는 요구나 일방적 강요나 공장 건설 한국 노동자의 모욕적 체포와 같은 위협이 아니라 서로 윈윈하는 상생의 자세로 한미의 새로운 관계에 임해야 한다. 이제 한·미 관계의 여하는 미국의 자세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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