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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0> ‘그린(Green)’ 위의 경제학 

한양경제 2025-09-22 11:13:39
주말 새벽,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을 밟으며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묘한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이스 샷!’, 필드를 가로지르던 작은 기적을 그려보며 드라이버로 과감하게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아이언으로 안전하게 끊어 갈 것인가. 그 짧은 순간의 고민 속에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골프의 한 타는 늘 그 질문을 던진다. 

첫 홀 티박스에서 드라이버를 잡으면 골퍼는 본능적으로 장타를 꿈꾼다. 그러나 힘이 과하면 공은 슬라이스나 훅으로 숲속에 사라진다. 경제의 초기 투자도 같다. 단기간에 큰 수익을 얻고자 하면 위험이 함께 커지게 마련이다. ‘위험과 보상의 균형’이 티샷에 그대로 담겨 있다. 만약 안정적인 수익을 택하려면 골퍼는 거리를 양보하더라도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페어웨이를 가로막는 벙커 앞에 서면 위험을 무릅쓰고 곧장 넘길 것인지, 안전하게 돌아갈 것인지를 두고 망설이게 된다. 이는 투자에서 고위험·고수익을 택할지, 안정적인 수익을 택할지와 다르지 않다. 어떤 선택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자신의 성향에 맞는 길을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골프는 매 홀마다 그 훈련장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스코어를 쌓아가는 과정은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닮아 있다. 초보일수록 매 홀마다 ‘버디(birdie)’를 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파(par)’를 지키는 지혜를 배운다. 화려한 성과보다 안정된 흐름이 라운드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경험은 조용히 일러준다. 만족은 욕심을 줄일 때 오히려 더 깊어진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처럼, 더 큰 성과를 좇기보다 안정적 만족을 누릴 때 오히려 효용이 깊어진다는 경제의 진리와 맞닿아 있다. 

드라이버와 아이언이 거시경제라면 퍼팅은 미시경제다. 수십 미터를 날려도 마지막 2m 퍼팅을 놓치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경제정책도 동일하다. 성장 전략을 아무리 잘 세워도 세금 집행, 복지 전달, 집행 일정과 같은 세부 조정이 어긋나면 효과가 반감된다. 가계의 재무도 마찬가지이다. 큰 수입 구조를 만들어도 지출 관리가 허술하면 자산은 불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2m의 집중력이 결국 경제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골퍼들은 그린 위에 서면 숫자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을 때때로 맞이하게 된다. 2m 퍼팅, 넣으면 파 지만 놓치면 ‘보기(bogey)’를 기록해야 한다. 통계는 성공 확률을 알려주지만 막상 퍼터를 잡은 손은 흔들린다. 경제에서도 비슷하다. 데이터와 확률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막상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마음이 숫자를 압도하곤 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기보다 감정적 존재라는 사실을 그린 위의 퍼팅에서 새삼 실감한다. 

스코어를 줄이는 과정은 더욱 흥미롭다. 100타에서 90타로 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하다. 하지만 80타에서 70타로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노력과 집중을 요구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이 바로 여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성과는 빠르게 오지만, 마지막 몇 타를 줄이는 데는 기하급수적인 시간과 땀이 필요하다. 성장의 고비는 언제나 마지막 몇 걸음에서 찾아온다. 

골프는 매너의 스포츠다. 벙커를 정리하지 않고 나오거나, 남의 샷을 방해하거나 타수에 눈이 멀어 알까기를 하거나 타수를 속이면 경기 질서는 금세 무너진다. 경제학의 ‘보이지 않는 손’ 역시 규칙과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약속과 규칙을 지켜야 균형이 유지된다. 매너 없는 골프가 난장판이 되듯, 신뢰 없는 시장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골프에서 실력은 중요하다. 기본기를 갈고닦은 사람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공을 맞히고, 실수를 줄인다. 그러나 필드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실력이 같아도 어떤 이는 나무에 맞은 공이 기적처럼 페어웨이로 튕겨 나오고, 또 어떤 이는 잘 맞은 공이 벙커로 굴러 들어가는 불운을 겪는다는 것을. 경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합리적인 투자와 치밀한 분석을 거듭해도, 세계정세나 시장 심리라는 바람은 우리의 계획을 뒤흔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운명 앞에 무기력한 존재일까? 골프가 주는 교훈은 다르다. 운은 통제할 수 없지만, 운을 맞이하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행운이 찾아오면 겸손히 받아들이고, 불운이 닥치면 담담히 다음 홀로 걸어가는 것.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단기적 손실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흐름을 보며 다시 전략을 세우는 이가 결국 승부에서 웃는다. 

라운드를 끝내고 나면 “오늘은 골프에 졌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곰곰이 떠올려 보면, 우리는 홀마다 작은 배움을 쌓아간다. 초반 몇 번의 실수가 라운드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듯, 인생 역시 한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긴 여정 속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린 위를 걸으며 배우는 경제학은 책에서 배우는 지식보다 훨씬 생생하다. 공 하나에 담긴 선택과 전략 속에서 우리는 시장의 원리를, 그리고 인생의 지혜를 함께 익힌다. 결국 골프는 잘 치든 못 치든 즐기는 사람이 이긴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경제와 인생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린 위의 지혜는 삶과 경제를 단단히 이끌어줄 나침반이 될 것이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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