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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프레스센터에서] 산부인과 홀대가 부를 파문(波紋)

김시영 의학전문기자 2025-09-22 14:59:25
수년 전 출산율 제고 방안을 위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부처별로 정책을 쏟아 내던 상황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부처별로 해법은 제각각이었다. 

당시 참석자들은, 소속 부처나 남녀 불문, 정부의 출산율 제고 대책이 헛돈 쓰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부처별로 집행한 예산만도 100조원 규모인데, 정작 가시적인 출산율 상승을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이 공감한 대목이 있는데, 바우처 성격의 용도 제한적 지원 대신 과감히 현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여러 부처에서 푼돈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주무 부처를 중심으로 현실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함께했다.

현금 지원이 더 효과가 있다는 걸, 정책부서가 모를 일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제아무리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라지만, 현금지원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현금 지원이 논제가 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또 수년이 지났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출산율 저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인구절벽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 2024년 합계출산율 0.75를 기록, 전년(0.72) 대비 소폭 반등한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출산율 우상향 기조를 이끌어갈 실효성 있는 정책 부재는 아쉽다.   

출산율 제고를 위해선 청년세대의 결혼과 출산을 위한 안정적인 직장, 급여, 주거환경, 출산 지원 대책, 육아·보육환경 등 필요한 목록이 너무 많다. 아울러 출산율 제고 정책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출산율 제고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산부인과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겠다.

산부인과는 여성의 임신과 분만뿐 아니라 부인병 등을 다루는 진료과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산부인과는 존폐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출산율 저하가 직격탄을 날렸다. 아이를 낳지 않다 보니 산부인과 의사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분만 중 사고에 대해 의사 책임을 엄하게 묻는 기조적 변화도 산부인과 쇠락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의료분쟁 내지는 의료사고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에 시달리는 교수를 보면서, 후학들의 산부인과 기피 현상이 심화 되고 있다는 진단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게 의료 현장의 목소리다.

의사가 신은 아닐 진데, 출산 과정에서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 중 사고를 놓고 전적으로 의사 책임으로 몰아가는 듯한 현실 앞에 산부인과는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분만 중 사고에 대한 경위나 책임 소재는 명확히 가려야 한다. 하지만 피해부모와 사회적 비난 여론을 환기하려는 방편으로, 의사 책임만 부각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 개원산부인과 의사는 “자신이 돌본 임신부가 아픈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겠느냐”고 했다. 이런 상태로는 머지않아 출산하러 해외로 가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돈 없는 사람은 집에서 아이를 직접 낳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출산율을 기록 중인 상황에서, 신생아 한명 한명 모두 소중한 우리의 미래다. 그런 신생아가 세상 빛을 보는, 그 고귀한 순간을 함께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소멸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바야흐로 산부인과의 위기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산부인과는 여성의학과로의 명칭 변경까지 고민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비명을 외쳐대고 있지만, 출산을 앞둔 임신부 아니고선 관심없어 보인다.

이들의 외침이 ‘소리없는 아우성’이 되지 않도록, 산부인과의 절규에 정책 당국이 귀 기울여야 한다. 산부인과 홀대가 부를 파문(波紋)이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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