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보험 제도의 근본 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국회와 정부, 전문가, 집행기관의 공감대 속에 본격화됐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산재보험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다. 공통 과제로 ▲신속성 확보 ▲국가 책임 강화 ▲선보상 제도 도입 ▲입증 책임 완화 ▲상병수당 도입이 도출됐다.
“상병수당 없이는 반쪽짜리 개혁”
이날 국회예산정책처 안태훈 박사는 산재보험의 철학적 기반을 짚었다. 그는 “산재보험은 자동차보험처럼 손해배상적 성격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보험”이라며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과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 기준을 언급하며 상병수당 도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ILO 기준 아홉 개 수당 중 상병수당은 필수다. 한국은 여전히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외국 수준의 소득 보장을 촉구했다.
그는 선보상 제도가 단순히 무이자 대출처럼 운영되면 제도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역학조사의 장기화 문제를 지적하며, “불명확한 회색지대에서는 약자를 위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 해석의 방향까지 짚은 발언으로, 제도의 공정성과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조직 개편과 자동화로 효율성 높이겠다”
현장에서 제도를 집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의 고혁진 국장은 실무 차원의 대응책을 설명했다. 그는 “2018년 대비 업무상 질병 신청은 3배 늘었지만 조사 인력은 10% 미만만 충원됐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공단은 본부에 업무상 질병국을 신설하고 전국 지사에 전담팀을 설치했으며, 111명을 추가 배치했다. 근골격계 질환의 자체 처리 확대, 표준화된 사실 확인서와 작업 동영상 도입, 외부 위탁 확대 등으로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그는 “2025년 들어 처리 기간이 감소세로 전환됐다”며 “2027년까지 평균 처리 기간을 120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고용부 “처리 기간 절반 단축·입증 책임 줄이겠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 차원의 개혁 청사진을 밝혔다. 그는 “정부는 2027년까지 업무상 질병 처리 기간을 평균 228일에서 120일로 단축하겠다”며 “산재보상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선보상 제도 도입, 국선 대리인 제도 마련, 규범적 판단 반영 등을 입법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원주 고용노동부 과장은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내놨다. 특별진찰·역학조사 축소, 추정의 원칙 법제화, 장기 미처리 사건 집중 처리 등 현장 중심 대안을 제시하며, “선보장은 상병수당이 정착되기 전까지 노동자의 소득 공백을 막는 최소 장치”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행정 지침으로 운영되던 추정의 원칙을 법률에 명문화하고, 판정위원회 산하에 ‘규범 판단 전문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우원식 의장 “국가가 책임지고, 즉각 보상해야”
우원식 국회의장은 산재보험의 본질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지만, 지연과 낮은 승인률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정감사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처리 기간은 평균 228일, 길게는 5년 이상 걸린다. 2017년 이후 승인 지연으로 사망한 피해자만 360명을 넘는다.
우 의장은 국가 책임 강화를 분명히 하며, 피해자에게 즉각 보상하는 선보상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그는 “산재는 구조적 문제이기에 피해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며 “보험은 당장 필요한 순간 작동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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