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 일라이 릴리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가 독점하던 시장에 국산 신약 후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K-비만주’가 새로운 투자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주사제 중심의 기존 시장을 ‘먹는 약(경구제)’과 ‘장기 지속형 제형’으로 대체하려는 기술 경쟁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5일 주식시장에서 디앤디파마텍 주가는 6.31% 오른 32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동제약 주가도 6.57%, 한미약품도 1.66% 오르는 강세를 보였다. 지수가 급락했지만 비만약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올린 것이다.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비만 치료제 관련 종목이 ‘K-바이오 2.0’의 주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미약품, 일동제약, 디앤디파마텍, 지투지바이오, 펩트론이 대표적인 ‘비만주 5대장’으로 꼽힌다.
◆ 한미약품, “국민 비만약”으로 세계 무대 노린다
국내 기업 중 가장 앞서 있는 곳은 한미약품이다. 회사는 GLP-1 계열 비만 치료 신약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임상 3상에서 평균 9.75%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했다. 일부 환자는 30%에 이르는 감량률을 보이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한미약품은 연내 국내 품목 허가를 신청해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BMI 30 이하의 여성에서 감량 효과가 두드러져, 한국형 체질에 맞춘 신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미는 국내 성공을 기반으로 해외 기술 수출과 글로벌 임상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5일 보고서에서 "한미약품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국내 비만 임상3상 성공으로 멀티플 리레이팅이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목표 주가를 40만원에서 53만원으로 32.5% 높였다.
◆ 일동제약·디앤디파마텍, ‘먹는 비만약’ 글로벌 시장 공략
기존의 주 1회 주사제(위고비·마운자로)는 고가와 불편함이 단점이었다. 이에 일동제약과 디앤디파마텍은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일동제약은 GLP-1 계열 경구 신약 후보 ID110521156의 임상 1상에서 하루 한 번 복용으로 4주 만에 체중이 평균 9.9% 감소했다. 이는 일라이 릴리의 오포글리프론(6.4%)과 로슈의 RG6652(7.3%)를 웃도는 수치다. 일동은 내년 미국 임상 2상에 착수한다.
이선경 SK증권 연구원은 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일동제약의 ID110521156 은 동일 계열내 경쟁 물질 중 임상 데이터를 통해 가장 우수한 내약성과 효능을 입증했으나 임상데이터에 대한 시장의 오해로 심각하게 저평가된 상황"이라며 "저분자 경구형 치료제가 등장할 경우 시장의 판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앤디파마텍은 GLP-1·GIP 이중작용 경구제 MET-GGo를 개발 중이다. 지방 분해와 식욕 억제에 동시 작용하며, 메스꺼움 등 부작용을 완화한 것이 특징이다. 회사는 과거 멧세라에 1조1000억 원 규모의 비만 치료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한 경험이 있다. 오는 6일 MET-GGo의 전임상 결과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다.
◆ 지투지바이오·펩트론, 약효 지속형 제형 차별화 전략
지투지바이오는 월 1회 또는 3개월 1회 투여가 가능한 비만 치료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핵심 기술은 약물을 서서히 방출하도록 설계한 미립구 기반 전달 기술 ‘이노램프(InnoLAMP)’다. 이를 적용해 위고비 성분(세마글루타이드)의 1개월 제형 개발을 완료했으며, 내년 상반기 임상에 돌입한다. 회사는 베링거인겔하임 등 글로벌 제약사 4곳과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해 조현병·치매 치료제에도 기술을 확장하고 있다.
펩트론은 지난해 일라이 릴리와 장기 지속형 주사제 기술평가 계약을 맺었다. 펩트론의 ‘지속형 약물 방출 기술’은 약효 유지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려, 주사 간격을 1주에서 수주 단위로 확장할 수 있다. 업계는 이번 공동 연구가 기술 이전 본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폭풍 성장’…K-바이오 수출 기대감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 규모는 801억 달러(약 110조 원)였으며, 2028년에는 1,422억 달러(약 195조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GLP-1 계열 치료제가 심혈관·당뇨 예방 효과로 범용성이 확대되면서, 제약사 간 경쟁은 신제형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부작용 완화, 복용 편의성, 제조 단가 절감 등 실용적 개선 포인트에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K-바이오가 주사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혁신형 제형으로 차별화에 성공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수출과 라이선스 아웃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편 종근당은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개발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회사는 간세포성장인자 수용체(c-MET)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후보물질 ‘CKD-703’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1/2a상 시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임상 진입은 종근당이 글로벌 ADC 분야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례다.
CKD-703은 비소세포폐암 등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개발 중이며, 2019년부터 네덜란드 시나픽스(Synaffix)와 공동연구를 통해 도출됐다. 종근당은 지난해 시나픽스의 ADC 플랫폼 기술을 1억3200만달러에 도입해 약물의 안정성과 효율을 확보했다. CKD-703은 애브비의 c-MET 타깃 ADC ‘엠렐리스’ 이후 차세대 계열 내 최고(best-in-class) 신약을 목표로 한다.
이창식 종근당 연구소장은 “엠렐리스가 고발현 환자 중심으로만 효능을 보였던 만큼, CKD-703은 저발현·중간발현 환자에서도 효과를 입증해 미충족 수요를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종근당은 엠렐리스와 동일한 미세소관 억제제(MMAE) 기반 페이로드를 사용하면서도 독성 관리 측면에서 개선된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혈소판 감소 부작용(트롬보사이토페니아) 발생률이 낮아 임상 진입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종근당은 CKD-703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화 경쟁력을 입증하고, 향후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전략도 검토할 계획이다.
미국의 위고비·마운자로 열풍이 국내에서도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한국형 체질에 맞춘 먹는 약·지속형 제형이 상용화되면, 2025년은 ‘K-비만약’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비만은 이제 미용이 아닌 대사질환 치료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양강을 위협하는 ‘K-바이오’의 도전이 본격화되면서, 국산 비만주 테마는 신약 혁신과 투자 기대감이 교차하는 차세대 성장 스토리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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