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67> 강화도의 노래
2025-08-27
‘강남달’은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작사‧작곡해서 음반에 수록한 최초의 창작가요다. 이 노래에 달이 등장하고 제목에도 달이 들어간 것이다. 1920년대의 서정과 애환을 머금고 있는 ‘강남달’은 이 땅의 첫 창작 영화인 '낙화유수'(落花流水)의 주제가였다.
노래의 제목 또한 ‘낙화유수’였는데, 나중에 가사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강남달’로 바뀌었다. 이별의 아픔과 망국의 서러움을 대변했던 우리나라 대중가요 제1호에서 겨레의 가슴 속에 처연하게 떠올랐던 밝은 달. 그것은 곧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조국을 상징했다. 그래서 구름 속에 가리워진 얼굴은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우리 대중가요에서 달은 망국(亡國)과 실향(失鄕)과 실연(失戀)의 통한과 비감을 머금고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와 더불어 시작된 대중가요사의 시대적인 한계와 속절없는 아픔이 투영된 것이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황성옛터’를 비춘 달빛도 그랬다. 이 땅에 본격적인 대중가요의 시대를 연 ‘황성옛터’를 조명한 달빛에도 황량한 정취와 쓸쓸한 감회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벗어날 길이 없는 일제강점기 망국의 회한과 탄식인 것이다. 시린 달빛에 젖은 적막한 황성옛터는 곧 나라 잃은 겨레의 가슴을 은유한 것이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꿈꾸는 백마강’의 달빛도 마찬가지다. 2절 가사의 마지막 구절처럼 백마강의 달빛이 깨어진 것은 망국의 형상화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달빛인들 온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우는 까닭이기도 하다. 패망한 왕국 백제의 최후 공간이었던 부여 백마강의 달빛이 고려 황궁의 옛터를 비추는 달빛처럼 가슴 저미는 절창의 모티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매의 기구한 운명과 화류계 여성의 아픔을 노래한 ‘홍도야 울지 마라’의 2절 가사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에서 달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서 구름이 암울한 식민지 현실이라면 달은 광복의 희망이다. 일제의 수탈과 유린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를 풍미한 ‘대지의 항구’는 허허로운 만주벌판을 표류하던 조선인들의 고단한 심신을 위로한 노래였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1절 가사 속의 달빛은 암울하던 시절 지향없는 나그네 길에서도 스스로 찾아야 했던 정서적 이정표가 아니었을까.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고, 촉석루에 달빛만 나무기둥을 얼싸안고, 아~ 타향살이 심사를 위로할 줄 모르느냐’.
동시대의 노래 ‘진주라 천리길’에서 ‘나무기둥을 얼싸안은 촉석루의 달빛’은 나라와 고향을 잃고 떠돌던 식민지 민중의 탄식이자 위무였다. 켜켜이 쌓인 설움이면서 애절한 자위(自慰)의 감성이었다.
망국의 유산을 상징하는 촉석루의 나무기둥을 얼싸안은 달빛마저 없었더라면 그 신산한 세월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대중가요 속의 달은 그렇게 망국과 실향과 실연을 달래는 주체이면서 객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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