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의 자연에세이] <35>‘열대야(熱帶夜)’
2025-08-05

철새는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번식지와 추운 겨울을 나는 월동지가 따로 정해져 있어 철따라 장거리를 옮겨 다니며 사는 새로 일정한 철에 일정한 경로를 날아서 이동한다.
철새는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구하고, 번식을 하기 위해 떼 지어 먼 거리를 오간다. 우리나라는 시베리아, 중국 동부 및 만주 지역에서 번식하고 일본 남부에서 호주에 걸쳐 월동하는 철새 집단의 주요 이동경로지다. 따라서 4~5월과 9~11월에는 100종 이상에 달하는 수백만 마리의 철새 집단이 우리나라에 오거나 우리나라에서 떠나거나 우리나라를 통과한다.
우리나라에 오는 철새로는 봄에 남쪽에서 날아와서 번식을 하며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온 곳으로 돌아가는 여름새, 북쪽에서 번식하고 가을에 날아와서 겨울을 나고 봄에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겨울새, 그리고 북녘에서 번식하고 가을에 우리나라를 통과해 남녘에서 월동하고 봄에 다시 우리나라를 통과해 북녘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새의 세 종류가 있다. 따라서 봄, 특히 4월과 가을, 특히 10월은 철새의 교환 시기이기도 하다. 봄에는 여름새가 오고 대신 겨울새가 떠나며, 가을에는 여름새가 떠나고 대신 겨울새가 온다. 나그네새는 이 두 시기에 잠시 머물다가 더 먼 곳으로 떠난다.
이 가운데 여름새로는 제비, 소쩍새(접동새), 뻐꾸기, 파랑새, 두견이, 물총새, 꾀꼬리, 팔색조, 후투티, 개개비, 밀화부리, 산솔새, 큰유리새, 솔부엉이, 뜸부기, 백로, 왜가리 등 64종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의 여름철 기후가 번식하는 데 알맞고 먹이가 많아서 해마다 찾아왔다가 추워지는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되돌아간다. 여름새는 소리 소문 없이 왔다가 간다.
겨울새로는 기러기류, 오리류, 고니류, 개똥지빠귀, 콩새, 쑥새, 논병아리, 독수리, 칡부엉이, 두루미 등 112종이 있는데 이들은 북쪽의 날씨가 추워져서 먹이가 없어지면 먹이가 많은 우리나라로 와서 지내다가 봄이 되면 북쪽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은 한꺼번에 요란하게 날아왔다가 간다. 나그네새로는 도요류, 물떼새류, 제비갈매기, 꼬까참새, 흰배멧새 등 90종이 있는데 이동 중에 휴식과 먹이 활동을 위해 우리나라에 잠시 머물다 목적지를 향해 다시 날아간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여름새는 제비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 우리의 시골에서는 제비가 매우 흔한 새인데다가 사람들이 사는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다. 우리의 유명한 고전소설인 ‘흥부전’에 제비가 등장하는 것도 그 친숙함 때문일 것이다. 제비는 많은 노래나 시에도 등장한다.
예컨대,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라는 노랫말을 가진 현제명 곡의 ‘가을’이라는 동요 또한 제비를 소재로 하고 있다.
또 하나의 대표적 여름새인 소쩍새는 그 울음소리 때문에 슬픈 전설로 많이 회자된다. 전설 하나는 못된 시어머니가 작은 솥으로 밥을 짓게 하여 밥이 부족한 며느리가 굶어죽어 새가 되었는데 “솥적다”고 울어서 소쩍새로 불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김소월 시인이 시로 남긴 것으로 오래비(남동생)가 아홉 명이나 있는 누이가 계모의 시샘으로 죽어 동생들이 보고 싶어 ‘접동, 접동’ 운다는 전설이다.
“누나라고 불러보랴/오오 불설어워/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야삼경 남이 다 자는 밤이 깊으면/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 ‘접동새’ 중에서. 본래 소쩍새는 올빼미과의 야행성이라서 밤에만 울며 수컷이 짝을 찾기 위해 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겨울새는 기러기라고 할 수 있다. 기러기는 가을에 찾아올 때나 봄에 떠날 때나 일자 또는 시옷자 대형을 지어 고향이라도 찾아가듯 어느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과 끼륵끼륵 우는 소리가 고향에 대한 나그네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래서 기러기가 등장하는 시나 노래는 대체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들이다.
일예로, “깊어가는 가을밤에 고향 그리워/맑은 하늘 쳐다보며 눈물집니다/시냇물은 소리 높여 좔좔 흐르고/처량하게 기러기는 울며 나는데”로 시작하는 ‘고향 그리워(만향 시, 이흥열 곡)’이 대표적이다.
한시도 마찬가지다. “봄이 왔는데 만 리 밖의 나그네는/전란이 그쳐 어느 해에나 돌아가나/애를 끊는구나, 강마을 기러기가/높이높이 정북쪽으로 날아가니.” 두보(杜甫) ‘귀안(歸雁)’중에서.
“고향이 어디쯤인가?/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네/회남 땅에 가을비 오는 밤에/다락방에서 기러기 오는 소리를 듣네.” 위응물(韋應物) ‘문안(聞雁)’중에서.
철새를 보면서, 우리는 오면 가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깨닫게 된다. 또 모든 현상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에 대한 우리 인간의 인식과 해석과 느낌도 있기 마련임도 알게 된다. 이처럼 철새의 이동은 새에게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지만, 타지에 있거나 여행 중인 외로운 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고향에 머물지라도 감수성이 큰 이들에게는 깊은 시름과 감상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때로 영감을 주고 감수성을 자극해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낳기도 한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