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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2>보호무역과 게임이론

한양경제 2025-10-06 07:00:04
죄수 두 사람이 어둡고 좁은 방에 격리돼 갇혀 있다. 서로 신뢰를 가지고 입을 다물면 함께 풀려날 수 있지만, 상대를 배신하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유혹의 속삭임에 빠져 결국은 둘 다 자백하게 되어 공멸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다. 국제 무역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협력’은 양쪽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선택이지만, 정치적 압력과 단기적 유혹 앞에서 종종 ‘배신’을 택한다. 자유무역(협력)을 선택하면 서로 관세를 낮추고 교역이 활발해지며 양쪽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관세 부과(배신)를 선택하면 우선은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상대도 보복 관세를 하게 되고 결국 양쪽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 트럼프 1기 때의 관세정책은 전형적인 배신의 전략이었다. 그는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각종 소비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쳤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고 미국 노동자를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트럼프 2기에 와서 다시 강화된 관세의 파도는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고율의 관세 정책은 단순 보호주의가 아니라, 게임판 위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전략적 레버리지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죄수의 딜레마만이 아니라, 치킨게임도 떠올리게 한다. 치킨게임은 두 자동차가 마주 달리며 누가 먼저 핸들을 꺾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게임이다. 미국은 “우리는 끝까지 간다.”는 시그널을 보내며 중국이 먼저 물러서기를 기대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 더 큰 힘을 가졌다는 자신감이 바탕이었다.

현재 세계 각국을 상대로 하는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치킨게임의 끝은 언제나 위험하다. 만약 둘 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충돌은 불가피하고, 같이 공멸할 수 있다. 

무역은 일회성 거래가 아니다. 해마다, 때로는 매일 반복되는 반복게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한 번의 배신은 상대의 보복을 부르고, 보복은 다시 보복을 낳는다. 트럼프1기의 관세에 맞서 중국은 미국산 대두와 자동차에 관세를 올렸고, 그 여파는 곧바로 미국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아왔다.

게임판 위에서 두 나라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결국 함께 손해를 보는 ‘내쉬균형’ 상태에 빠지게 됐다. 현재 세계 각국을 상대로 하는 트럼프 2기의 관세정책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관세전쟁은 마치 불 꺼진 시장 한복판에서 상인들이 서로의 좌판을 걷어차는 모습과도 같다. 잠시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할 수는 있겠지만, 곧 시장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다. 흥정의 소리는 사라지고, 거래의 온기는 식는다. 자유무역이라는 등불이 꺼진 자리에는 의심과 보복의 냉기가 남게 된다.

게임 이론은 냉철하지만 분명한 교훈을 준다. 단기적으로는 강경한 관세가 협상에서 지렛대가 되어 자국의 이익추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 상실과 보복의 악순환이 뒤따르게 되므로, 반복게임에서 승자는 상대를 꺾은 자가 아니라, 끝까지 협력을 유지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게임이론은 시사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배신의 유인을 억제하고 협력이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만든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 제도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트럼프 2기의 행정부는 WTO의 다자무역체제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협력 대신 배신의 게임 전략을 택함으로써, 세계무역질서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세계가 직면한 과제는 신냉전, 팬데믹, 기후위기, 지정학적 갈등 등 어느 한 나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힘겨루기가 아니라 협력이다. 

게임이론은 우리에게 묻는다. 국제 관계에서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길과, 신뢰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길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게임의 법칙은 냉정하지만 그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할지는 플레이어 각자의 손에 달려 있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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