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74> 월야유정(月夜有情) ⑤
2025-10-22
조미미의 데뷔곡 ‘떠나온 목포항’은 정통 트로트의 비감이 넘실거린다. 노래의 가사는 물론 리듬의 정조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에 배어있던 실향과 이별의 정한이 되살아난 듯하다. 조미미 또한 목포의 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남 영광에서 출생한 조미미는 목포에서 성장하며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1969년 동아방송 주최 가요백일장을 통해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16세 나이로 데뷔했다. 그런 조미미의 노래에 바다의 서정과 항구의 정한이 출렁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서산 갯마을’ ‘바다가 육지라면’ ‘서귀포를 아시나요’ ‘연락선’ 등 1970년대를 풍미한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다.
바다는 섬과 육지를 분리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면서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심리적인 공간의 표현이기도 하다. 항구는 바다와 육지의 출발지점이자 도착지점으로 만남과 이별의 감성이 공존하는 곳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분단과 전쟁, 도시화에 따른 이촌향도의 굴곡진 민족사의 여정에서 바다로 떠나는 항구는 이별의 아픔이 짙게 스민 비애의 통로였다.
‘얼마나 멀고 먼 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조미미의 대표곡 ‘바다가 육지라면’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울로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슬픔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의 바다에 대한 원망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노래의 배경은 뜻밖에도 서해가 아닌 동해에 있는 경북 경주 감포읍 나정리 앞바다다. 경주 사람인 작사가 정귀문이 문무대왕릉이 있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고단했던 시절의 울적한 심사를 노랫말로 엮었기 때문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정귀문은 여기서 청마 유치환의 ‘그리움’이란 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조미미의 노래 ‘선생님’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등에서는 바다와 항구라는 단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바다의 심리적인 격리감이 만남과 이별의 순정 사이에 드리워 있다. 조미미는 ‘가슴 아프게’를 부른 목포고 출신의 가수 남진과 첫사랑의 염문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으로 시작하는 남진의 노래도 바다가 갈라놓은 이별의 아픔이다.
조미미는 1960~70년대 트로트 황금시대를 견인한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다른 장르에 이끌리지 않고 오로지 정통 트로트를 고집하는 순정을 지켰다. 일본 엔카의 여왕인 미소라 히바리와 한국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닮았던 조미미는 본명이 조미자였다. 그런데 이미자와 이름이 겹쳐 활동에 불편함이 있을 것을 우려한 작곡가 김부해가 조미미로 예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제주도의 이국적 풍광과 애잔한 정서를 노래한 ‘서귀포를 아시나요’ 역시 바다가 갈라놓은 섬과 육지의 정서적 변주이지만, 바다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에 대한 순수한 동경이자 애틋한 정념이다. 이 노래는 때마침 감귤 재배를 확장하던 서귀포 지역의 홍보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노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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