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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8> AI 시대 노동의 위기와 성찰

한양경제 2025-11-17 16:00:25
“10년 뒤에도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기계가 나보다 더 잘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인공지능(AI)이 기사를 쓰고,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고객 상담을 대신하는 시대다. 로봇은 공정에서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움직이고, 알고리즘은 시장의 변화를 감지해 투자 판단을 내린다. 기술은 분명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많은 사람은 이 변화 앞에서 커다란 불안을 느낀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삶의 곳곳에 깊숙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 (Jeremy Rifkin)이 1995년에 쓴 ‘노동의 종말’에서 자동화가 대량 실업과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경고했다. 당시에는 지나친 비관론으로 들렸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의 주장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실제로 기술이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소위 ‘중간층 일자리’로 불렸던 사무·행정·단순 전문가 영역에서 자동화의 영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노동시장의 중간이 비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미래학자인 마틴 포드(Martin Ford)는 ‘로봇의 부상’에서 기술 변화의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산업혁명기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다면, 오늘의 AI는 인간의 사고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판단, 예측, 패턴 분석처럼 지적 역량이 요구되는 업무가 기계로 대체되는 순간 인간의 노동이 갖는 희소성은 크게 낮아진다. 한때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졌던 직업들마저 기술의 영향권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야가 일시에 기술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사람의 판단과 손길이 필요한 영역은 많다. 문제는 속도다. 기술 발전은 멈추지 않고, AI의 성능 향상은 예측보다 가파르다. 이 격차를 개인이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기술의 변화가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와 연결되면서 안정적 직업이 줄고, 미래 소득 전망이 흐려지는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기술 발전을 비난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기술은 이미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 중이며,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을 어떻게 사회적 질서 안으로 끌어안을 것인가이다. 기술이 만든 생산성과 이익을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 노동시간 단축, 직업 전환 지원, 지속적 재교육 같은 논의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실험이 아니라, 현재에서 바로 정책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들이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사람을 위한 안전장치는 필수적 공공재가 돼야 한다. 혁신이 계속되기 위해서라도, 그 혁신이 가져오는 불안과 충격을 완화할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보다 앞서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노동의 의미’이다. AI 시대의 노동 위기는 단순한 고용 문제를 넘어 가치문제로 이어진다.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이며 자존감의 근거이기도 하다. 기술이 노동을 빠르게 대체할수록, 인간에게 남겨진 일의 성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더 중요해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계에게 넘겨준다면, 인간에게 남는 영역은 결국 인간다움이 요구되는 영역일 것이다. 공감, 책임, 관계 맺음, 윤리적 판단 같은 요소들은 아직 기술이 완전히 모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기술이 모든 과정을 최적화하고 자동화하더라도, 인간 삶의 결을 부드럽게 잇고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노동 위기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그 흐름이 인간의 위기로 이어질지는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술이 인간을 밀어내는 시대가 될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대가 될지는 지금 우리의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결정한다. 변화가 거셀수록 필요한 것은 기술 속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잡아가는 일이다. 

AI가 더욱 정교해질 미래는 분명 새로운 도전의 시대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성찰하고, 다시 정의할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성찰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기계와 함께 일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인류는 인공지능의 수혜자가 될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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