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선도하는 '경제 나침반'

[경제와 논술] <23>다수결 원리와 경제학

한양경제 2025-10-13 11:11:45
가을은 선택의 계절이다. 
수많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무는 불필요한 가지를 버린다. 자연은 다수의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이치와 리듬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간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다르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의 방식으로 자주 ‘다수결’을 사용하며, 다수가 옳다고 믿는 길을 사회의 방향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나 올바른 방향일까?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그 낙엽을 보고 ‘자연의 질서’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무질서 속의 아름다움’이라 말한다. 다수결이라는 제도도 어쩌면 그런 낙엽과 닮아 있다. 겉으로는 질서 있고 공정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감정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우리는 흔히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다수가 선택한 길이 곧 옳은 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경제학은 이 믿음에 조용히 물음을 던진다. 정말 다수가 선택한 것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일까? 혹시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낙엽처럼 떨어져야만 했던 희생은 아닐까? 

어릴 적 반장 선거를 떠올려보자. 친구들끼리 서로를 추천하고, 손을 들고 투표를 한다. 가장 많은 손이 향한 친구가 반장이 된다. 그 순간은 마치 모두가 한마음이 된 것 같지만, 그 뒤에 남겨진 소수의 표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마음은 반영되지 않았고, 그저 ‘패배한 선택’으로 묻혀버린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는 이런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불가능성 정리’를 통해, 어떤 집단도 완벽하게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점심 메뉴를 고른다고 가정해보자. A는 김밥 >라면 >샌드위치, B는 라면 >샌드위치 >김밥, C는 샌드위치 >김밥 >라면 순으로 선호한다고 가정한다.

이들의 선호를 다수결로 비교하면, 김밥 vs 라면에서는 김밥이 이기고, 라면 vs 샌드위치에서는 라면이 이기며, 샌드위치 vs 김밥에서는 샌드위치가 이긴다. 결과적으로 선호가 순환되며, 어떤 메뉴도 명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마치 숲 속에서 길을 찾으려다 나무들 사이에서 방향을 잃는 것처럼. 

경제학은 선택의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단순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따져본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 공장을 세우는 안건이 있다고 하자. 다수는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찬성하지만, 공장 근처에 사는 소수는 소음과 환경오염을 걱정한다. 다수결로 결정하면 공장은 세워지겠지만, 그 소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경제학은 이런 상황을 ‘외부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어떤 선택이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려 한다. 피해를 입는 사람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마치 숲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뭇잎의 흔적을 따라가며 다시 길을 찾는 것과 같다. 단순한 방향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 길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가격’이 신호가 되고, 민주주의에서는 ‘표’가 신호가 된다. 시장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가 커피를 사면, 그 커피의 수요가 생기고 가격이 변한다. 하지만 투표에서는 내 한 표가 전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소극적이 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합리적 무관심’이라 부른다. 이 무관심은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낳는다. 충분한 정보 없이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안개 낀 숲에서 나침반 없이 걷는 것처럼. 결국, 다수결은 공정하고 간명한 규칙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개인의 선호를 어떻게 집단의 결정으로 바꿀 것인가’라는 더 깊은 단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다.

경제학은 이 과정을 ‘선호의 집계 메커니즘’으로 본다. 여기서의 난점은 두 가지다. 첫째, 각자의 선호가 서로 얽혀 ‘순환(cycling)’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둘째, 선호의 ‘강도’와 ‘정보의 질’이 표 한 장에 묻혀 사라진다는 점이다. 즉, 다수결은 ‘누가 더 많은가’를 잘 가리키지만 ‘얼마나 간절한가’와 ‘얼마나 잘 아는가’에는 둔감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경제학은 완벽한 해답을 주진 않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다양한 선택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순위 투표나 점수제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소수의 의견도 반영할 수 있다.

둘째, 정보의 질을 높여야 한다.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셋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한다. 다수의 선택이 소수에게 피해를 줄 경우, 그 피해를 함께 감당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런 방식은 마치 숲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길을 찾는 것과 같다. 혼자서는 길을 잃을 수 있지만, 함께라면 길을 만들 수 있다. 다수결은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경제학은 그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절차를 섬세하게, 보상을 정직하게, 정보를 맑게 만든다.

가을 숲의 낙엽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떨어지지 않듯, 인간의 선택도 한쪽으로만 향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떨어지는 방향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 다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다수의 선택 속에서도 소수의 목소리가 바람결처럼 들려올 때, 그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한 숲이 될 것이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일반적으로 온대지역에서 식물은 봄에 날씨가 따뜻해 땅이 풀릴 때 소생해, 여름에 작열하는 햇빛과 풍부…
원숙의 시절
8월 중간은 하지로부터 약 50여일이 지난 시점이다. 따라서 그만큼 해의 고도와 열기도 낮아진다. 아침과 …
가을의 전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