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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9>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 

한양경제 2025-11-24 10:34:19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가 되려면 국가는 먼저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쉽게 떠올리게 하는 질문이다. 복지는 더욱 필요해지고 사회적 위험은 커지고 있는데, 이를 감당할 재정적 기반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의 확대와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문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방향과 직결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의 저서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의 복지국가 모델은, 복지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용한 틀을 제공해 준다. 그는 복지국가를 사회민주주의·보수주의·자유주의 모델로 나누며,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느냐에 따라 복지체계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평등을 강화한다.

국민 모두가 일정한 수준의 서비스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는 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보수주의 모델’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가족과 직업적 지위에 큰 의미를 두며 전통적 공동체의 역할을 유지하는 방향이다. 반면 ‘자유주의 모델’은 시장을 중심에 두고, 국가의 복지 개입을 최소화해 개인 책임을 강조한다. 

이 세 가지 모델은 복지국가가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복지지출의 지속 가능성을 바라보는 기준이 된다. 보편 복지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높은 조세부담률과 강한 노동시장 참여가 전제될 때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자유주의 모델은 비용 부담이 적지만, 빈곤과 불평등이 확대될 위험을 안고 있다. 복지는 결국 국가의 가치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한편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는 여기에서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자유의 헌정’에서 그는 과도한 복지 확대가 국가의 권한을 지나치게 키우고 개인의 자유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복지가 선의에서 출발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재정 부담이 증가하고 시장의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또한 과도한 복지 의존은 장기적으로 지출을 더 늘리는 구조적 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복지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지가 재정적·제도적으로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두 관점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 보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방향은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복지 지출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만, 고령화 속도와 복지 수요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노인 관련 지출은 향후 몇 십 년간 계속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지출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조세 기반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구조가 지속 가능성에 부담을 준다. 

조세 수용성 또한 높지 않다. 선진 복지국가와 달리 한국은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를 제공할 만큼 조세 기반이 확장되어 있지 않다. 에스핑-안데르센의 시각으로 보자면 한국의 복지 구조가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요소를 점점 받아들이는 데 비해, 재정 구조는 여전히 자유주의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 불일치가 앞으로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를 축소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저출생 문제와 노동인구 감소 문제는 적정 수준의 복지 투자가 미래의 경제 활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보육과 교육, 돌봄, 주거 안정과 같은 기본적 복지 인프라는 노동시장 참여를 높여 장기적으로 재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복지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복지를 많이 할지 적게 할지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체계’를 만들 것인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 서비스는 보장하되, 도움이 더 필요한 이들에게는 더 두텁게 지원하는 방식처럼 보편성과 선별성을 적절히 섞은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조세 기반을 넓히는 일,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는 일, 사회보험 제도를 미래에 맞게 손질하는 일이 앞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아울러 빠르게 줄어드는 생산가능 인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청년·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안정적인 돌봄 체계를 갖추는 것이 앞으로의 복지국가 지속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란 단순히 복지를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국가가 아니라 복지와 재정, 자유와 책임 사이의 균형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에스핑-안데르센이 말한 ‘일관된 복지체계’의 중요성과 하이에크가 강조한 ‘재정 여력과 개인의 자유’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함께 고려될 때, 한국 사회도 보다 지속 가능하고 책임 있는 복지국가 모델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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