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화의 포토에세이] 판교, 도시 공간의 미학
2025-09-16
늘 그렇듯이 일에 지친 토요일이면 서울 도봉산을 찾는다. 도봉산 전철역에서 출발해 서너 시간이면 오봉까지 닿는다. 따뜻한 물과 커피, 컵라면을 준비하고, 산을 오르면 추운 날에도 배낭을 짊어진 등에는 땀이 찬다. 굳이 산 능선을 타지 않아도 산 옆구리를 지나면 소담스레 말을 건네는 작은 나무들의 이야기 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늘은 높고 멋진 바위와 소나무들이 세상의 시름을 벗게 하고, 철 지난 단풍이 마지막 가을을 지나감을 예고하는 듯 단풍들이 마지막 기력을 다한다. 번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의 이야기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산이 있기 때문이다. 먼 길을 지나는 이 산길이야말로 살아가는 세상의 원동력이다. 이 모든 건 다 이 산에서 출발했으니까.
홀로 산길을 걷는다. 사각사각 낙엽이 발길 사이에서 이야기를 더하고, 홀로 가는 가을 길 외롭지 않은 친구가 된다. 마치 내가 곁이 있다는 듯, 나무들도 가지를 흔들며 악수를 청한다. 샛길은 옛 어릴 적 고향 산골 마을 앞산을 생각나게 한다. 하늘은 맑고, 마음은 더 넓어지는데,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길도 어느새 걸음을 멎는다.
사이 좋은 형제가 줄을 선 오형제봉이 보이고, 나란히 다섯 형제가 자리를 잡은 사이,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작은 막내의 귀염둥이 모습에 시선을 멈출 줄 모른다. 사람들은 알까? 저 오봉 형제들도 늘 소담스럽게 이야기들로 재잘거린다는 것을. 사람들이 그리 찾지 않는 자리, 산 나무 사이 자리를 하고, 커피 한 잔에 목을 녹이노라면, 저 하늘 끝이 맞닿을 듯도 하다.
오형제봉 봉우리에 오르는 사람들의 자취가 하나의 풀벌레처럼 느껴질 때, 저 멀리 능선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세가 세상 이야기를 비웃는 듯하고, 산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거대한 역사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있기 전, 이곳에 먼저 바위가 차지하고, 오형제봉 산봉우리가 먼저 세상을 움트고 있었음을 말이다.
서울 근교에 이런 아름다운 산자락이 있는 건 너무 행복이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지친 몸을 이 산야에 다 헤쳐 풀어놓고 가는 건 평안과 안식이다. 매사에 옳고 그름을 다투는 세상일에 시달려, 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사이좋은 오형제봉의 모습은 볼 수 없을까? 막내가 고개를 살며시 내미는 모습은 일을 찾아 먼 길을 떠난 막내를 생각나게 한다.
내일은 또 사람들이 서로 옹기종기 앉아 일을 다투고, 매사에 옳고 그름을 따지겠지만, 오형제봉은 사람들의 그 모습을 오늘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사이좋은 오형제의 모습을 닮으라는 이야기인 양, 맑은 가을 하늘 높이 말없이 서 있다. 곧 차디찬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듯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이 땅에도 곧 모든 게 얼어붙은 긴 겨울이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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