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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인공지능 시대의 인프라 <3> 반도체

한양경제 2025-11-24 10:29:35
오늘날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린다. 그만큼 거의 모든 산업에서 반도체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다수 산업 제품에는 반도체가 직접 탑재되거나 아니면 반도체의 도움을 받아 생산된다. 실제로 반도체 없이는 오늘날과 같이 성능이 우수하고 편리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텔레비전, 라디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모든 가전제품을 비롯해, 휴대전화, 컴퓨터, 프린터, 로봇, 드론, 자동차, 기차, 선박, 비행기, 각종 무기 등 모든 제품의 몸체에는 반도체들이 탑재되어 있고 그 반도체에 의해 작동되고 조정된다. 뿐만 아니라 그 제품들의 생산, 유지, 보수, 관리도 반도체에 의존한다. 스마트 농업이나 어업에서 보듯, 전통적인 1차 산업조차도 반도체의 도움을 받아야 그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반도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 제품이다. 그나마 종류에 따라서는 그 값이 수천만 원이나 하는 매우 비싼 최첨단 제품이다. 그런 반도체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반도체는 이제 산업 제품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이나 그 제품의 생산을 위한 기반인 셈이다.

말하자면, 반도체는 이제 도로나 철로나 항만시설 또는 전기나 통신과 같은 산업을 떠받치고 산업을 돕는, 그래서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산업 인프라이기도 한 것이다. 그 자신이 하나의 제품이면서 동시에 다른 산업 제품을 위한 인프라라는 점에서 반도체는 산업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반도체를 단순히 하나의 산업 제품으로만 보아왔다. 반도체가 다른 산업 제품에도 활용된다는 점을 익히 보고 알면서도 그것이 동시에 산업의 매우 중요한 인프라라는 점에는 주목하지 못했다. 반도체를 단순한 하나의 제품으로만 본다면, 연구․개발하고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과 위험이 너무 커서 그 제조를 기피하게 된다. 반도체는 끊임없이 고도화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매우 어렵고 시간과 품도 많이 든다. 또 새로운 제품을 위한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데에도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게다가 반도체는 수요와 공급의 기복이 심해 수요가 클 때는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엄청난 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도 큰 산업이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독일 등 산업 선진국들조차 그 제조는 피하고 대신 설계나 소재나 장비만 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일본은 최초의 반도체 제조 강국이었으나 반도체가 고도화하면서 경쟁에서 밀렸다. 

이러한 반도체가 미래의 주요 산업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많은 인력과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꾸준한 연구․개발로 반도체를 고도화하며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해왔다. 그 결과 현제 한국은 반도체를 2나노 급까지 고도화하고 양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모두에서 설계, 소재, 장비, 제조, 패키징 등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다 아우르는 반도체 산업의 완벽한 생태계를 구축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

우리와 더불어 반도체 2대 강국의 하나인 대만은 시스템 반도체만을 생산하면서도 한때 반도체 최강자로 등장했었으나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고급사양의 메모리 반도체인 HBM(High Broadband Memory: D Ram을 기판에 수직으로 쌓아올려 그 성능을 고도화한 메모리 반도체)이 AI 시스템 반도체인 GPU보다 더 중요하게 되고, 2나노 반도체와 유리 기판 개발에서 삼성에 뒤처지면서 그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인공지능의 용량이 갈수록 커지기에 그에 대비하기 위해 D램을 쌓은 HBM에서 그 용량이 D램의 10배쯤 되는 낸드 플래쉬(Nand Flash)를 쌓은 HBF(High Broadband Flash)를 개발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HBM-PIM(Processing in Memory)이라는 메모리칩에서 연산을 수행하는 통합적 성격의 칩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반도체를 올려놓는 기판으로 지금까지 플라스틱을 썼으나 이제는 이를 유리 기판으로 대체하고 있다.

반도체가 다층 구조의 고성능 칩으로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무게와 열에 유리 기판이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유리 기판의 실용화에 성공하여 양산 체제를 갖추었다. 삼성전자는 또 CXL(Computer Express Link: 서버끼리 메모리를 실시간으로 빌려 쓸 수 있게 해주는 기술로 차세대 데이터 센터의 핵심 인프라)도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 등 신기술 발전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등장한 이른바 뉴로모픽이라는 기술을 적용하여 만든 뉴로모픽 칩(Neuromorphic Chip: 인간의 뇌 기능을 모사하는 기술을 적용해 속도, 전력, 집적 측면에서 큰 이점을 가진 반도체)을 최초를 개발하고 양산체제를 갖췄다.

또한 인공 지능 분야에서 모델의 성능이 규모와 비례한다는 통념에 도전한 고도로 전문화된 추론 모델인 TRM(Tiny Recursive Model: 초소형 재귀적 모델)을 개발했다. 이는 인공지능에서 재귀적 추론 메커니즘을 통해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제공한다. TRM의 성공은 크기가 아닌 아키텍처가 인공지능 성능의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향후 TRM이 거대 언어 모델 내에서 특정 작업을 전담하는 전문가 모듈의 일부로 통합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현재 시장 경쟁과 미래 혁신을 위한 이원화 전략의 소산이다. 

이처럼 삼성을 필두로 한국의 반도체 업계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왔다. 인공지능이 본격화하면서 고사양 메모리 반도체 HBM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나의 첨단 제품이면서 동시에 산업의 인프라이기도 한 이 칩의 95%를 한국이 생산한다. 거의 완벽한 독점이다. 게다가 그런 칩의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용량을 대폭 늘리는 HBF, 연산까지 수행하는 통합형의 메모리 반도체, 그리고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뉴로모픽 칩까지도 개발 완료했거나 거의 개발했다.

여기에 고사양 반도체의 안정성을 기할 유리기판의 개발, 기존의 칩들만으로도 서버의 메모리를 향상시킬 CXL 기술 개발, 인공지능의 효율성을 위한 TRM의 개발 등으로 인공지능의 미래에도 대비하고 있다. 값비싼 최첨단 제품이자 인공지능 시대의 필수불가결한 인프라인 반도체에서 한국은 가장 준비된 나라가 됐다. 게다가 한국은 네이버 하이퍼클로버, 카카오 브레인, 삼성 가우스 등이 인공지능의 대형 언어 모델인 LMM도 개발하고 있으며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다. 

우리는 인공지능 산업이나 사업을 가능케 하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MIT 보고서는 세계 AI 강대국 순위에서 한국을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 나라로 꼽았다.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한국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재, 시스템, 속도 등 모든 것을 고루 갖추고 있다.

우리를 단지 메모리 반도체나 잘 만드는 작은 나라로만 인식하던 이들에겐 놀랄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깨어보니 한국이 반도체에서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서도 초강대국이 되었다니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가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의 인프라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인공지능에 필수인 고사양 반도체의 한국 점유율을 안다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철강, 자동차, 가전제품, 이차 전지, 바이오, 조선, 방산, 전력, 통신 등 거의 모든 주요 산업에서 기술 선진국이다. 특히 거의 모든 산업에서 쓰이기에 산업의 인프라가 된 반도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전적으로 반도체에 의존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필요한 반도체를 설계하는 미국이 그 두뇌라면 반도체를 생산하는 우리는 그 심장이다.

이제 그 어느 나라도, 심지어는 미국도, 한국의 고도화된 반도체 기술 없이는 인공지능 산업이나 사업이 거의 불가하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에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한국과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빅 테크들, 투자사들, 각국 지도자들이 한국으로 몰려와서 한국에 투자를 약속하며 한국의 협조를 구하는 이유다.

이효성 한양경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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