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가 주도해 개발 중인 저전력 메모리 모듈 규격인 소캠(SOCAMM, System On Chip Advanced Memory Module) 상용화에 마이크론이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업계도 가세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소캠(SOCAMM)'은 AI 서버용 탈부착식 D램 모듈의 새로운 규격으로, 'HBM의 뒤를 잇는 차세대 메모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HBM 보완하며 AI 서버·데이터센터 전력 효율 개선 기대
14일 업계에 따르면 이들 업체들은 LPDDR5X 기반 D램을 모듈화하여 AI 서버, GPU 기반 시스템 등에서 전력 효율과 업그레이드 유연성을 높인다는 전략적 목표가 있다. 과거 HBM(High Bandwidth Memory)이 AI 연산 가속의 핵심 메모리로 각광받았다면, 소캠은 HBM이 닿지 못한 영역인 저전력, 가변성, 확장성을 보완할 ‘제2의 HBM’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캠이 주목받는 주요 배경은 크게 전력 효율성으로 승부하고 모듈 업그레이드성, 공급망 리스크 분산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전력 효율과 성능 균형의 요구다. AI 연산이 고도화되면서 메모리의 전력 소모는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구조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기존 서버용 메모리인 RDIMM이나 DDR 기반 모듈은 대역폭은 확보하나 소비 전력 및 발열 부담이 크다. 반면 소캠은 LPDDR 계열 D램을 활용해 전력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모듈 설계 최적화를 통해 HBM 수준의 대역폭을 겨냥하는 구조로 설계된다.
예컨대, 마이크론은 자사 소캠 모듈이 동일 용량 기준 기존 DDR5 RDIMM 대비 소비 전력을 약 1/3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밝혔고, 모듈 치수 또한 14×90mm 수준으로 설계해 공간 효율을 높였다. 이는 데이터센터에서 전력-면적 제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환경에서 강력한 어필 요소다.
◆초기 도입은 서버 중심…미래 로봇·PC까지 확산 전망
둘째는 모듈화와 업그레이드 유연성이다. 전통적으로 LPDDR D램은 기판에 납땜(bonding)되는 방식이었고, 개별 모듈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소캠은 모듈화된 구조를 갖추어 ‘탈착 가능’한 메모리 모듈로 설계된다는 점이 핵심 강점이다. 즉, 서버나 AI 시스템에서 필요할 때 모듈을 교체 또는 확장할 수 있어 유연한 시스템 구성이 가능해진다.
이는 HBM이나 기존 고대역폭 메모리들이 보통 패키징 수준에서 통합되어 교체가 불가한 것과 대비된다. 또한 모듈화는 유지보수, 업그레이드, 재사용 측면에서도 유리한 구조를 제공한다.
셋째는 공급 안정성 및 경쟁 구도 변화다. 기존 HBM 시장에서는 멀티 벤더 경쟁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반면 소캠은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과 함께 개발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물량 발주가 기대된다. 이미 삼성·SK는 자체 소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연내 공급 시작을 선언한 상태다.

◆ 메모리 업계 신성장동력으로 ‘제2의 HBM’ 부상
엔비디아는 올해 약 60만~80만 개의 소캠 모듈을 AI 제품군에 도입할 계획이며, 내년에는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 물량 분할 역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메모리 시장 구조는 다시금 재편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약 소캠이 시장 표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면, HBM 중심의 구조에서 복합 메모리 혼합 체계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다.
소캠이 기대만큼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난제도 있다. 우선 공정 수율과 제조 역량 격차 문제다.
마이크론은 LPDDR5X를 기반으로 모듈을 선행 개발했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이미 LPDDR 공정 경험과 고(高)급 공정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특히 최신 공정에서의 수율 안정성 확보는 납품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소캠 수율에서 경쟁사 대비 뒤처지는 조짐이 있다고 보고한다.
표준화 및 생태계 확장도 관건이다. 현재 소캠은 엔비디아 중심 독자 규격 성격이 강하다. 공동 개발 참여 업체들이 많지만, JEDEC 같은 국제 표준화 기구 차원의 인증 또는 확산 여부가 미래 생존성을 가를 변수다. 만약 특정 벤더 중심의 규격으로 남는다면 확장성과 생태계 구축에 제약이 따른다.
일정 지연 리스크도 있다. 엔비디아가 소캠 도입 일정을 조정하거나, 1세대 소캠의 적용 시점을 늦추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기술 완성도 확보, 시스템 연동 안정성 확보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소캠이 본격적으로 각광 받는 이유는, AI·데이터센터 시장이 고성능 메모리의 균형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성능-유연성의 삼박자를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모델로 설계된 소캠은, AI 워크로드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메모리 축으로 부상할 여지가 크다.

◆한국 반도체 양강 체제 굳히기 기회, 글로벌 판도 변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소캠은 캐시 카우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력과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소캠 시장 진입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으며, 향후 소캠2 등 후속 제품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마이크론은 초기 우위에도 불구하고 수율 및 공정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될 위험이 있다.
이제 기술의 완성도, 표준화 구조, 생태계 확장 여부, 수요의 실제 구현 등이 소캠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흐름만 놓고 보면, 메모리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는 징후가 확실해 보인다. AI 시대의 메모리 경쟁은 HBM 중심에서 소캠 중심으로 무게추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캠 초기 시장은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의 첫 공식 공급사로 선정되면서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기술 우위를 갖고 도전장을 내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탑재될 소캠 시장에서 양강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화하는 소캠시장에서 3사가 치열한 초격차 경쟁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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