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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

한양경제 2025-10-13 10:11:32
2기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미국 정부가 맺었던 다자 간 또는 양자 간의 관세 협정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나라와 개별적인 새로운 협상을 요구했다. 게다가 합리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없이 그저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면서 관세를 낮추려면 미국산 물품을 대량으로 수입하거나 막대한 대미 투자를 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와 미국과의 관계의 안정성을 파괴하는 일로 트럼프 행정부의 단기적 성과를 위해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와의 관세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2012년부터 시행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효력을 일방적으로 정지시켰다. 그리고는 25%로 미리 설정해 놓은 한국의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전제조건으로 3천500억 달러(약 490조원)라는 거금의 대미 현금 투자를 선금으로 요구했다.  

게다가 그 돈의 투자 결정은 미국이 하고 이익은 원금회수 시까지는 한국과 미국이 5대5로, 이후에는 1대9로 나눈다는 조건이라고 한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국가 간의 정상적인 호혜적 거래가 아니라 19세기 열강시대에나 있을 법한,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무리하고 강압적인 일방적 요구다. 

게다가 이 금액은 우리 외환보유고의 80%에 해당돼 그 돈을 다 투자하면 한국은 1997년 저 악몽의 외환위기를 다시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한국 경제는 커다란 어려움에 빠지고 한국 기업은 헐값에 매각해야 하는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국은 투자 협상의 하나로 미국에게 무제한 통화 스왑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적인 무리한 요구에 합의하면 자신이 탄핵을 당한다며 서명을 거부하고 미국의 압박을 버텼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여러 조치와 방침으로 압력을 높였다. 우선 미국은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한국은 자주국방과 전작권 환수 카드도 맞섰다. 미군 철수 카드가 먹히지 않자 미국은 조지아 주에 현대와 LG가 건설하던 배터리 공장의 한국인 특수직 노동자들을 H-1B 비자(특수한 지식과 학사 이상의 학위 또는 그와 동등한 자격증을 가진 특수직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일시적 비이민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모욕적으로 체포하고 구금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1천 달러 정도인 H-1B 비자 수수료를 100배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비판이 일자 말을 바꾸었다. 그러더니 처음에는 반도체에, 나중에는 제약과 영화에 대해서도 관세를 100%로 인상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며 한국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발표에 대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게 됐다. 예컨대, 미국 내외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일관성이나 치밀한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된다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3천500억 달러를 투자하느니 차라리 25%의 관세를 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들은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해칠 뿐이라면서 일부 주에서는 그에 대해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들 소송이 진행되면 그에 대한 위헌 판결의 가능성이 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무효가 될 소지도 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에의 투자 압박은 관세협상을 구실로 동맹국의 기술과 돈을 거저 차지하려는 행위라는 비판들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강압적인 행위에는 미국의 극우화 경향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미국에는 이른바 ‘마가(MAGA: 이민에 엄격한 미국 우선의 극우적 세력)’ 또는 ‘레드넥(Redneck: 교외에 사는 저학력,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으로 불리는 극우적인 세력들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대만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 행정부는 그들의 의견을 대변하여 만만하지 않은 중국 대신,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동맹국 한국, 일본, 대만을 대상으로 터무니없는 요구와 도를 넘는 압박으로 관세협상의 가시적 성과를 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5천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받기로 합의한 것처럼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을 압박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압박이 심해져도 굽히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밟는다고, “밟아지는지 한번 봐라, 밟는 발도 뚫릴 것”이라고 말하며 결연한 의지로 계속 버텨오고 있다.

그러자 이런 한국의 꿋꿋한 자세로 정치적 부담이 커진 미일 관세협상의 일본 측 주역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성 장관은 미일의 합의액 5천500억 달러 가운데 “실제 직접 투자 비중은 전체의 1-2%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출과 보증 형태가 될 것”이라고 미일의 이면합의를 털어놓았다. 이 실토로 트럼프 행정부는 머쓱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와 그 지지 세력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들은 이들 국가들이 생산한 가성비 높은 제품들로 풍요로운 삶을 누려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뺏어간 것이 아니라 인건비와 공장 시설비 등이 너무 높아 미국의 기업들이 자국내 생산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해외 생산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이 제조업을 부활시키려면 미국의 제조업이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잘 살펴야지 남 탓은 책임전가일 뿐이다. 미국의 인건비와 시설비가 높게 유지되는 한 미국 기업도 해외 기업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하면 흑자를 내기 어렵기에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일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나마 한국은 공장을 지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이미 반도체와 배터리를 비롯한 20여 곳의 주요 산업의 공장들을 짓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거의 전 분야의 제조업을 고루 갖춰 미국의 제조업 부활에 필수불가결한 상대다. 그런 동맹국 한국을 절실한 경제 파트너로서 대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는 것은 결코 바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자세다.  

미국은 한국마저 잃으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꿈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시적 성과를 위해 또는 체면 때문에 한국을 계속 압박하는 자세를 견지하면, 한국에서 반미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결국 ‘주한미군 철수’라는 구호조차 나올 수 있다는 염려도 해야 한다. 

이제 한·미 간에 관세협상이라는 게임을 끝낼 때가 되었다. 서로 상대의 패도 알게 됐다. 미국에게 중국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은 위협이 되지 않을 뿐더러 미국의 제조업 부활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첨단 기술과 각종 제조업은 미국의 제조업 부활에 너무도 필요하고, 일부 군수산업에서는 미국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관세정책의 뚜렷한 성과도 필요해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한국을 갖은 수단을 동원해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는 너무도 무리하고 일방적인 것이어서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협상을 질질 끄는 것은 서로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동맹은 협력과 존중의 대상이지 갈취의 대상이 아니다. 희생양은 더더욱 아니다. 더구나 한국은 이제 미국에 경제를 의존하는 별 볼일 없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작게는 동아시아의, 크게는 세계의, 안보와 공급망에서 핵심축이다. 더구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면 한국의 지정학은 더할 수 없이 유리하다.  

그런 나라가 가장 친미적인 나라의 하나라는 사실은 미국에게는 커다란 축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하루빨리 일방적인 압박에서 상호존중의 자세로 태세를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효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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