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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패러독스]<8> 홍콩H지수 연계 파생증권 ELS의 ‘공포’-上

현물지수에 온갖 ‘파생 조미료’ 버무려 만든 ELS
국내 투자자, 불확실성·리스크·변동성 연구 부족
워런버핏 “파생상품은 현대 금융의 대량살상무기”
한양경제 2024-01-29 11:16:00
홍콩H지수 연계 파생증권, ELS(주가연계증권) 상품 가입자의 대량 손실 사태가 현실이 됐다. 이런 대형 투자 손실 사건은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뉴스에 등장한다. 몇 년 전엔 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있었다. 그 보다 10년쯤 전에는 이름도 유명한 KIKO(키코) 사태가 있었다. 반복되는 대형 투자손실 사태의 중심엔 언제나 파생상품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전 세계를 금융 위기로 몰아넣은 2008년 니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진 핵폭발 급 초대형 경제 화산 폭발이었다. 세계 경제에 끼친 여파와 악영향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어느 나라도 자유롭지 않다. 이 엄청난 사태의 시작과 끝에도 ABS(자산유동화증권) 즉, 파생상품이 있었다.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를 이해하려면 먼저 ELS의 의미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ELS에서 ‘S’는 증권화(Asset Securitization, 자산 유동화)된 금융 자산을 의미한다. 이 증권화는 누군가의 소유 자산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상품(주식, 채권, 환율, 금리 및 원자재 등의 증서)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가능하도록 둔갑시키는 기술 아니면 ‘마술’이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즉, 빠르게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담보로 새로운 증권을 만들어내는 이 방법은 무한히 많은 새로운 거래를 이끌어낸다.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고 판매해 온 금융 상품이어서 새롭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다. 하지만 기존 자산을 다시 증권화한다는 면에서 늘 새롭다. 이 새로운 증권화 상품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기 위해선 파생 구조 즉, 선물과 옵션 같은 거래 모델이 도입된다. 자산을 작은 알갱이로 쪼개고 많은 사람이 거래할 수 있도록 증권화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파생상품이 개입한다. 

홍콩H지수 ELS 상품은 비유하자면 재료와 조리법이 무척 복잡한 신개념 요리다. 기본 식재료는 50개 중국 본토 대형 기업이다. 홍콩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이 기업들의 주가지수가 홍콩H지수다. 이 현물 주가지수에 콜 옵션(Call Option)과 풋 옵션(Put Option), 선물(Futures) 같은 ‘파생 조미료’를 충분히 섞어 준다. 조리가 끝나는 시간은 결정돼 있지만 때론 연장되거나 조기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 만기까지 원하는 요리로서 조건이 완성되면 먹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버려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문제는 한국의 일반 투자자들이 정체 불투명한 이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기준에 불과한 이 지수를 식재료로 선택한 것부터 의아하다.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Uncertainty)과 리스크(Risk), 홍콩 증권시장의 변동성(Volitility)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국 국영 기업 수십 개의 실적과 미래가치는 더 알기 어렵다. 식재료의 안전성, 맛과 영양의 조화, 조리 과정의 위생 상태 따위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쉽게 많이 팔 수 있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물건이지만 어떤 불량한 의도와 레시피(recipe)로 요리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의심스런 음식이란 얘기다. 

어떤 금융 상품이라도 파생으로 엮이면 그 손익 구조는 매우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거래는 폭발하고 시장 규모는 날로 커진다. 자본시장에서 파생 거래는 진즉에 현물 거래를 압도했다. 장외 파생 시장은 기본적으로 사적 계약에 의한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그 규모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어디로 향해 가는지 혼란스럽고 불안한 자본시장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산과도 같아서 늘 조마조마하다.

신이 허락한 이 시대 최고의 투자자 워런버핏 조차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고 고백했던 것이 바로 파생상품이다. 오죽하면 그가 “현대 금융의 대량 학살 무기”라고 단언했겠는가. 그의 말 때문이 아니라도 누구나 2007년의 미국 금융 위기를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다. 파생증권이 창궐한 나라의 피폐해진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조용래 객원칼럼니스트/前 홍콩 CFSG증권 파생상품 운용역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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