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고율 관세, EU의 새 보호무역 장벽, 중국의 감산 정책과 불법 수출 단속이 잇따르면서 한국 철강사들은 수출 시장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기 국면에 직면했다. 국내 대표 기업인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도 각각 차별화 전략을 통해 생존과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관세폭탄 현실화…수출 전략 전환 불가피
미국은 6월부터 철강 수입품에 대해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한국산 철강의 경쟁력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은 올 3월부터 12월까지 총 2억8,100만 달러(약 4,000억 원) 수준의 관세를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6월 이후 관세율 인상으로 납부액이 급증한 점이 확인됐다.
이같은 관세 환경에서는 범용 강재 중심 수출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특히 판재류, 열연·후판 등이 직격탄을 맞았으며, 대신 고부가 강판·표면처리 제품 등이 수익성과 경쟁력을 지탱할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스코·현대제철은 이를 염두에 두고 수출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중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신흥국 중심으로 영업망을 넓히거나,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건립 계획을 검토 중이며, 포스코도 이에 지분 참여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13일 보고서에서 "수입산 철강 규제 강화로 내년으로 갈수록 포스코홀딩스의 철강 부문 영업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 정부의 철강 생산설비 치환 정책 새로운 버전 발표 등 중국의 철강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정진수 흥국증권 연구원은 2일 보고서에서 "현대제철의 판재 부문은 중국산 반덤핑에 대한 최종 판정을 통해 유연한 가격 정책이 가능해졌다"면서 "특히 중국산 저가 수입으로 인해 오랜 기간 가격이 억제된 상태에서 조선 및 자동차 등 전방 수요가 양호해 가격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저탄소 경쟁력 확보가 필수 과제
EU는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무관세 쿼터(TRQ)를 대폭 축소하고, 쿼터 초과 수입분에는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조치를 마련 중이다. 더불어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적용으로 탄소 배출량까지 수입 제품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대응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전환과 전기로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 제철 플랜트 실증 및 해외 직접환원철(HBI) 사업을 추진 중이며, 현대제철도 전기로 기반 철근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동국제강 역시 소재와 기술 결합을 강화하면서 경량 강재, 특수강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조정하고 있다.

◆공급망 리스크와 현지화 전략 강화...정부 공조 강화 및 제도 대응
중국 정부가 철강 감산과 불법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급 안정성도 흔들리고 있다. 이에 국내 철강사들은 안정적인 원료 확보와 유연한 생산 배치를 위한 해외 거점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인도 JSW 그룹과 협력해 현지 철광·제철 사업을 추진하며 인도 내 공급망 확보를 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 내 제철소 건립을 통해 북미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관세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검토 중이다.
국회에서는 ‘K-스틸법’ 입법이 지연되고 있으나, 철강협회와 포항시 등은 제도 마련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반덤핑 전담팀 재정비, 관세청·무역위원회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저가 철강재 유입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관세법 개정안은 제3국 우회 수출을 덤핑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고, 조사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중국산 슬라브의 인도·베트남 경유 유입 등을 겨냥한 조치로 평가된다.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이 당면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하다. 단순히 수출을 늘려 외형을 키우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무역장벽을 넘어서는 기술 경쟁력, 친환경 전환, 공급망 재구축이 생존의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
미·EU의 보호무역 강화가 ‘기회’로 바뀔지, 그저 또 다른 위협이 될지는 이들 기업들이 우선적 과제에 얼마나 속도감 있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내 철강사들은 중국 정부의 공급 통제 강화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미·EU 포함) 심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인도 미국같은 해외 거점 확보를 통한 공급망 재구축, 무역 장벽을 넘어서는 기술 경쟁력 강화, 친환경 전환이라는 근본적 과제에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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