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공정 약관’ 시정명령 안 따라도 국가기관들은 ‘나 몰라라’
2023-09-27

감사원이 부동산 신탁사의 신탁계약서상 약관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는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가 특정 신탁사의 약관법 위반 사건처리를 축소하거나 특혜를 줬다는 지적과 관련해 위법한 행정 처리가 있었는지를 따지는 차원이다.
그동안 부동산신탁업계에서는 신탁업자의 면책이나 일체 이의제기 금지, 부재소 합의 조항 등으로 불공정 계약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공정위가 수년간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는 비판이 거셌던 만큼 감사 결과가 주목된다. <관련기사 ‘[단독] ‘불공정 약관’ 시정명령 안 따라도 국기기관들은 ‘나 몰라라’’(2023년 9월 27일) 참조>
14일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를 열고 공정위에 대한 감사 실시를 의결했다. 당시 감사원은 공정위가 2019년 5월 금융투자업자인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에 시정권고를 하고도 해당 신탁사가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 ”적법한 시정명령 조치 등 법적 조치를 하지 않아 직무유기 등 위법행정을 했다”는 청구인들의 감사 청구를 검토한 끝에 감사 실시를 결정했다.
앞서 공정위는 2018년 8월 한자신의 개발신탁계약서와 관련해 약관법 위반 여부를 심사했다. 이어 다음 해 5월 ‘특약’에 숨긴 9개 조항을 포함해 불공정 약관 13개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라고 시정권고를 했다.
하지만 감사청구인 측은 “한자신이 공정위 시정권고를 수용했다고 한 후에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공정위는 해당 신탁사에 시정명령 등 조치를 않은 채 장기간 방치하는 등 특혜를 주고, 직무유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감사청구인들은 2023년 7월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했고, 감사원이 감사 실시를 의결함에 따라 이번 감사가 시작됐다.
다만 감사원은 지난 1월 중순께 감사 처리 기간을 이달 29일까지로 한차례 연장해 최종 결론은 이르면 3월 초쯤 공개될 예정이다.
통상 감사청구에 대해 감사실시를 결정하면 결정일부터 60일 안에 감사를 종결한 뒤 10일 안에 결과를 청구인에게 통지해야 한다.
감사원 측은 공정위 감사 기한 연장 사유에 대해 “(청구인의) 청구 사항에 대한 책임소재 규명 등 내부 심의기간 소요”에 따라 기한 연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2019년 5월 한자신이 전국 11개 신탁사업 현장 투자자들과 맺은 ‘차입형(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의 △시공사 선정 △공사비·사업비 지급 △사업 정산 결과 이익 여부 등에 대한 일체 이의제기 금지, 사업자 면책 등 9개 불공정 약관이 ‘특약’에 들어 있는 등 총 13개 조항이 불공정 약관에 해당함에 따라 수정 또는 삭제하라는 시정권고를 내렸다.
기자가 입수한 공정위 시정권고서에 따르면, 한자신이 각종 신탁계약에 사용한 ‘시공사 부도 파산’ 뒤 시공사의 모든 권리행사 즉시 중단과 ‘일체 이의제기 금지’ 등은 이미 성립한 계약상 채권·채무를 무효로 하는 계약해제와 유사해 민법에 반하고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조항이다. 이는 약관법(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무효다.
또 공정위는 사업자 면책 조항도 민법 750조에 따라, 자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에 해당해 타인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에도 수탁자(사업자)의 귀책 사유와 무관하게 책임 전부를 면책하도록 하는 것은 불공정 약관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2019년 공정위의 시정권고 이후에도 한자신이 전국 신탁사업 현장에서 불공정 약관을 다수 재사용한 사례가 수차례 민원을 통해 제기됐다.
그런데 공정위는 민원인의 거듭된 민원에도 ‘문제 없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시정권고 후 약 2년이나 지난 2021년 5월 뒤늦게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특히 시정명령도 애초 시정권고한 13개 조항 중 단 2개 조항을 대상으로 해 ‘축소 은폐’ 논란을 빚었다.

약관법에 따르면 사업자가 시정명령을 정당한 사유 없이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시정명령조차 불이행하는 경우에는 다수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현저한 경우에 해당해 사업자를 검찰 고발하고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공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한자신이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권고에 이어 시정명령 이후에도 사용하고 있다’는 연이은 민원 제기에도, 검찰 고발뿐만 아니라 시정명령 불이행 사실 등을 공표하지 않아 반발을 샀다.
이에 따라 이번 감사원 감사는 공정위가 불공정 약관의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시정명령 등 법에 명시된 조치를 장기간 하지 않은 이유와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한 법적 대응 지연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부동산 신탁업계에서는 그동안 투자자(수익자)와 중·소형 건설시공사들이 신탁사와의 불공정 약관 거래로 피해를 봤다는 주장들이 전국적으로 제기돼 온 만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부동산 신탁계약서의 불공정 약관 개선을 촉구해온 감사청구인 측 정유경씨는 “감사원의 공정위 감사가 뒤늦게 시작된 감은 있지만, 감사원 감사로 공정위 등 정부기관이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신탁계약서를 묵인해 온 관행이 개선되는 길이 열리기 바란다”며 “감사원은 더 이상 감사 처리를 미루지 말고 금융투자업자인 부동산 신탁업자의 불법계약서를 이용한 불법 신탁영업에 따른 피해자들이 더 양산되지 않도록 조속하고 철저하게 감사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1) 로그아웃감사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서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