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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7> 6월, 녹음방초가 꽃보다 좋은 때

유월은 낮이 길어 일조량 느는 데다
햇볕은 아침부터 뜨겁게 내리쬐니
무더운 여름날들이 예비되고 있구나
한양경제 2024-06-02 10:01:53
1일 전북 익산에서 망종을 앞두고 다 익은 보리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이효성

그레고리력에서 6월은 초여름이다. 지구의 온난화와 한반도의 아열대화의 탓인지 뜨겁고 더운 여름 날씨가 늦봄인 5월부터 나타나다가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낮이 길고 덥다는 것은 그만큼 농작물이 잘 자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되면서 농번기도 시작된다. 

6월에는 보리나 밀은 익어서 수확을 기다리고 벼는 모내기를 해야 한다. 이들의 이삭에는 모두 까끄라기가 있다. 그래서 6월 5일이나 6일에 24절기의 하나인 ‘망종(芒種: 까끄라기가 있는 종자)’ 절기가 시작된다. 보리나 밀의 수확과 벼의 모내기가 끝나면 곧바로 콩은 심고 감자는 캐야 하고 매실, 자두, 앵두 등 일찍 꽃을 피웠던 나무들의 열매는 따야 한다. 때문에 농부에게 6월은 무척 바쁜 달이다. 사실 6월은 10월의 추수철 못지않게 바쁜 농번기다.

6월을 가장 특징적인 달로 만드는 것은 역시 ‘하지(夏至)’다. 6월 21일이나 22일에 드는 하지는 지구의 북반부가 태양에 가장 가까운 때로서 해가 가장 높이 뜨고 따라서 연중 낮이 가장 길고 복사열이 가장 많은 날이다. 하지 때 햇빛은 북회귀선인 북위 23.5도에서 수직으로 내리쬐고 북회귀선 이북 지역에서는 해가 연중 가장 북동쪽에서 떠서 가장 북서쪽으로 지며, 북극선인 북위 66.5도 이북의 북극권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 

하지 무렵에야 따뜻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는 북극선에 가까운 러시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영국 등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해가 밤늦게 잠깐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나타나서 밤이 낮처럼 환한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해가 오랫동안 머물러주는 것만도 고마워서 하짓날이 매우 중요한 축일이기도 하다.

하지가 대표하는 여름은 성장과 생식(生殖)으로 구현되는 생명 활동이 가장 왕성한 때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하지가 있는 6월이 사랑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약혼과 결혼의 달이기도 하다. 유럽은 대체 위도가 높은 나라들이 많은데 그들 나라에서는 여름이 우리의 따뜻한 봄 날씨 정도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하짓날 결혼한 신혼부부의 사랑과 다산을 위해 결혼 첫 달 동안 꿀로 만든 음식을 먹였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풍습에서 하지 무렵의 만월을 일컫는 ‘꿀의 달(The Honey Moon)’이라는 말이 유래했고, 이 말이 결혼 첫 달 또는 신혼여행 기간을 뜻하는 허니문(the honeymoon)’이라는 말로 전화(轉化)했다고 한다.

여름이 뜨겁고 더운 까닭은 춘분부터 밤보다 더 길어진 낮이 날이 갈수록 더욱더 길어지면서 해가 더 높이 떠서 내리쬐고 일조량이 많아지는 데다가 한반도에 열대성 고기압권인 북태평양 기단(氣團)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6월 중순까지는 날씨가 안정적이나 하순부터는 한반도 북쪽에서 한대성 고기압인 오오츠크해 기단의 저온다습한 공기가 내려오면서 북태평양 기단과 부딪히게 된다. 이처럼 두 기단이 부딪히는 곳에서 호우성 주룩비인 장마비가 내리는 장마전선이 형성된다. 

장마전선은 두 기단의 세력의 강약에 따라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가는 곳마다 장마비를 내리게 한다. 이른바 몬순형 기후에 속하는 이 장마기간이 과거에는 대체로 6월 하순 어간부터 약 한 달가량 계속되었으나 최근에는 한반도의 아열대화로 더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6월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짙어진 초목은 지상을 녹음방초(綠陰芳草: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향기로운 풀)가 우거진 진초록의 세상으로 만든다. 어디를 가나 땅에서는 온갖 풀들이 자라 향기를 풍기고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나뭇잎이 우거져 그늘을 만든다. 이렇게 녹음방초가 우거지게 되면 꽃들은 잎들에 가려지게 된다. 

흔히 봄꽃들은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우고 꽃도 대체로 화사한 데다 가지에 온통 꽃뿐이어서 꽃이 눈에 잘 띄지만, 여름꽃들은 잎보다 늦게 피기에 대체로 클 대로 커진 잎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신 녹음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방초가 향기를 뿜어준다. 봄에는 꽃이 두드러진다면 여름에는 녹음방초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여름을 일컬어 “녹음방초가 꽃보다 더 나은 때(綠陰芳草勝花時)”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름의 무더운 날씨는 벼농사에는 안성맞춤이다. 벼는 더위와 습기를 좋아하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 말부터 시작되는 모내기 때부터 벼가 자라는 여름 내내 논에는 언제나 물이 있어야 한다. 벼를 심기 위해 물을 잡아놓은 논이나 모내기를 한 논에 개구리들이 몰려와 시끄럽게 울어대는데 특히 밤에 더 그러하다.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사랑의 세레나데인 셈이다. 

대체로 모내기가 시작될 즈음에는 야산에서 자라는 밤나무에 여러 갈래의 황백색의 수꽃들이 다닥다닥 피어나서 많은 꿀과 함께 특유의 매우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이는 꽃가루받이를 위해 벌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려는 밤나무꽃의 냄새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6월 초중순의 농촌풍경을 지배한다. 감자는 ‘하지감자’라고 해서 대체로 하지 무렵에 수확하는데 과거에는 구황식품으로, 오늘날은 간식이나 건강에 좋은 보조식품으로 매우 중요한 먹을거리다.

6월에는 자귀나무가 7월까지 꽃을 피운다. 또 무궁화, 능소화, 배롱나무는 모두 6월부터 9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이들은 같은 꽃이 계속해서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꽃들이 피고 지고를 이어간다. 6월에 매실, 자두, 버찌, 앵두, 살구, 오디 등의 과일이 익는다. 한국에서는 매실로 매실주, 매실청, 매실식초, 매실잼, 매실장아찌 등으로 많이 먹는다. 

매실은 노랗게 잘 익어야 과육도 많고 당도도 높아 맛과 향도 더 좋고 피로 물질을 분해하는 구연산도 10여배 이상 높아진다. 그러나 잘 익으면 벌레의 피해도 많고 과육이 물러져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덜 익어 단단한 청매실을 판매한다. 그러나 완숙하지 않은 청매실에는 ‘아믹달린’이라는 독극물이 있으므로 피하고, 대신 노랗게 익은 것을 택해야 한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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