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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의 포토에세이] 가을, 다시 그리움을 걷다

한양경제 2025-10-14 15:33:53
충북 괴산의 가을 들판. 이일화

가을이 오면,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의 모습이 유난히 눈이 부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농약을 뿌리는 때와 수고가 지나고서야, 긴 시간의 열매를 맺는 듯, 벼가 알알이 영글어 가을을 이야기한다. 황금빛 들판만 보고 있어도, 수북한 알곡에 그냥 배가 부르다.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손길도 일 년간 농사를 거둬들이니, 그 마음이 얼마나 푸근하랴? 가을이 되면 모든 게 풍성해진다. 

어린 시절, 대부분 그랬듯 서울은 동경과 꿈의 대상이었고, 시골 농가에서도 논 몇 마지기를 가지려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다. 겨우 보리밥으로 일 년을 거의 연명했을 때였다. 그나마 밥을 굶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도 정부 수매에 탈곡한 벼를 내기 바빴으니, 시골 농가에서 흰 쌀밥을 먹기란 그만큼 여유가 필요했다. 물론 평야를 품고 있는 지역에서는 조금 달랐겠지만 말이다. 

경북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길가에 코스모스들이 피어있다. 이일화

농가의 주 소득원이 벼농사 대신 참깨, 고추, 담배, 수박, 과수와 같은 특용작물로 차츰 바뀌었다. 시골 논보다 밭의 땅값이 오히려 비싸졌지만, 산골 마을은 빈 농가들이 늘어나고, 빈집들이 보인다. 이마저도 철거되고, 마을이 있던 곳곳은 집들이 사라지니, 여기저기 묵밭이 보인다. 그걸 아는 듯 모르는 듯 저 산 아래에는 황금 들판이 물결에 출렁인다. 

그 무덥던 여름도 계절을 달리해 어김없이 떠나고, 가을이 선뜻 다가왔다. 가을 단풍이 들기 전 먼저 황금빛 들녘이 익어간다. 손에 잡히는 벼 이삭이 유난히 토실토실하다. 매년 추수 때와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온 산천에 풍성함이 스며 있는 듯하니 말이다. 물론 가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땀방울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 농촌의 길을 걷는 표정엔 초등학교 시절 신작로에 코스모스를 심던 그리움이 파란 하늘에 하늘거린다. 

경북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논에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이일화

황금빛 벼가 출렁거리는 가을. 다시 고향을 찾는 마음은 아늑하기만 하다. 토실토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황금 들판에 그리움이 알알이 영글어 그리움에 황금빛을 더한다. 마치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재잘거리며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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