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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의 포토에세이] 산불이 지나간 마을, 그 이후

한양경제 2025-08-22 10:25:20
화마가 지난간 능선에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일화

경북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지난 3월 산불이 발화한 의성과 산맥이 이어진 마을이다. 사방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안동시 외곽, 대부분의 사람 사는 마을은 농경과 도로를 따라 이어지지만, 조금만 농로를 따라 산길을 오르면, 깊은 첩첩산중에 마을이 고여 있음을 알게 된다. 산불은 산중 마을만 불태운 게 아니라. 산자락에서 멀리 떨어진 농가까지 불씨를 날려 집을 불태웠다.  

산불이 지나간 마을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다시 먹을거리를 심고, 밭에는 콩과 깨, 고추, 생강과 같은 특용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들에는 어김없이 벼가 자라고, 마을의 먼 산에는 산불이 지나간 모습이 역력하다. 아직 산의 검은 투구를 벗지 못했지만, 깊은 산중을 찾으면 곧 푸르름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화마로 민둥산이 된 능선에 새싹들이 움트고 있다. 이일화

사람들은 나무가 불에 타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산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탄 참나무에 초록색 새순들이 돋고, 어느새 작은 관목들이 일어나 초록색을 덧칠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더웠던 한여름이 지나고, 이제 입추를 맞아 맑은 가을 하늘이 시작됨에도, 놀랍게도 노거수 측백나무에도 군데군데 새순이 돋는다. 아! 짙은 생명력이여! 

참 신비로운 일은 화마를 입은 소나무들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파리가 노랗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장대 같은 참나무들은 다시 새순이 돋아 초록빛 산의 자태를 뽐낸다. 산불이 그리 강렬했지만, 단단한 참나무의 속내를 다 태우지는 못했나 보다. 올해는 비록 도토리 맛을 못 보겠지만, 내년엔 열매를 맺어 오가는 산 짐승들이 배를 채우게 되리라. 

화마가 지나간 마을 밭에 콩밭이 푸르르다. 이일화 

태양광 전력 시설로 치장하는 인간들의 속내에도 산과 들은 그저 말이 없고, 푸르른 하늘만 응시할 뿐이다. 멀리서는 아직 검은 투구를 벗지 못한 산이지만, 그 안에서는 언제 산불이 났느냐는 듯 초록빛 생명이 숨을 쉰다.  

어려운 경제 살림에도 붉은색 화마의 강성노조가 마지막 남은 파이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때, 산업시설을 갉아 먹는 붉은 노조의 그 강한 산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생명력 있는 산하를 보노라면, 우리 민초의 삶에도 아직 부푼 꿈과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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