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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1> ‘트로트 열풍’을 바라보며

한양경제 2023-09-14 14:20:08
‘트로트 열풍’의 시대를 실감한다. 이른바 ‘트로트의 르네상스’를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것은 트로트가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가장 ‘핫’한 가요 장르임을 웅변한다.

‘미스터트롯’을 비롯한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방송가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며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트로트의 그 어떤 내공이 오늘 한국 사회를 이렇게 강타하고 있을까. 트로트는 우리 대중문화사에 어떠한 비의(秘意)를 품고 있는 것일까. 

우리 한국인들의 트로트 신드롬을 돌이켜보며 ‘무엇이 이토록 트로트에 열광케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그것은 한국이 왜 ‘트로트를 권하는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사회경제적 함의를 풀어내는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트로트 열풍의 배경으로 우선 경제적 불황에 따른 복고풍 성향과 ‘코로나 팬데믹’의 암울한 시대적 영향 그리고 가수 선발을 위한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별함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트로트 열풍의 내막을 설명할 수는 없을 듯하다. 더 깊은 연유가 있을 것이다. 트로트라는 음악 자체가 지닌 고유한 특성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트로트야말로 한국인의 문화적 DNA를 보듬기에 가장 적합한 가요 장르였을까.

트로트는 한과 흥을 함께 풀어내는 음악이다. 트로트의 가락과 가사는 정한과 신명을 아우르고 있다. 그렇게 서러우면서도 흥이 있다는 점에서 트로트는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닮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알 듯 모를 듯 트로트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재발견하는지도 모른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트로트 가요의 노랫말과 선율이 더없이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다. 좌절과 절망으로 가슴이 쓰릴때일수록 더욱 그렇다. 꼭 내 심중을 대변하는 듯한 그 노래는 다른 장르의 가요로는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더러는 처연한 성음으로 더러는 신나는 박자로 세파에 지친 가슴을 어루만지며 시대의 아픔마저 달래준다. 

우리 대중음악에서 트로트 만큼 숱한 시련을 겪었으면서도 오랜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장르도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겨레의 망향가이자 저항가로 출발해 곡절 많은 대중의 삶과 함께 하며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트로트.

그것은 고단한 서민적 애환을 위무해온 슬프고도 흥겨운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류하며 시대의 감성을 담아온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노래는 위로이고 희망이기도 했다. 대중은 가요와 더불어 삶의 애환을 나누며 망국과 광복, 분단과 전쟁, 혁명과 독재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르는 굴곡진 역사의 격랑을 건너왔다. 구비마다 시대의 감성을 담고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며 대중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대중의 희노애락을 가장 진솔하게 드러내는 트로트는 그렇게 구구절절한 역사의 현장이자 애틋한 시대의 풍속화다.

트로트는 일제 탄압과 전쟁 광풍을 이겨내고 왜색(倭色) 논란과 ‘뽕짝’ 시비에 이은 금지곡의 암흑시대를 감내했다. 1970년대 청년문화를 지배한 록음악과 포크송에 밀려 존재감마저 잃어버린 듯 했지만 트로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장수 프로그램인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1990년대 노래방 문화와 2000년대의 새바람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오늘 ‘트로트 열풍’을 바라보며 대중가요 속의 트로트란 음악 장르의 100년에 이르는 영욕의 역사를 돌이켜본다. 한 시대를 풍미한 트로트 가요 속에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속과 인정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 대중가요가 품고 있는 당대의 풍정(風情)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물론 작사·작곡가와 얽힌 안팎의 사연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정체성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오랜 세월 대변해온 트로트 가요를 통한 시대별 사회·경제적 탐색은 오늘의 한국를 잉태한 지난 시절의 생생한 증언이자 재확인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생동감 넘치는 망원경과 현미경이 될 것이다.

트로트 음악이 일부 부정적인 요소인 경박한 가락과 천박한 가사의 일면까지 극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온국민이 공감하는 대중음악으로 거듭나면서 우리의 정서와 한국의 멋을 담은 트로트의 한류 창출을 기대한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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