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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4> 트로트 국적 논란 ㊦

음악계 이슈로 떠올랐던 ‘뽕짝 왜색론’
1970년대 日 ‘엔카의 뿌리는 조선’ 논란
트로트, 日보다 한국인 흥취에 더 어울려

한양경제 2023-10-30 14:20:23
템포가 빠른 이른바 ‘뽕짝’의 저속성과 ‘전통가요’라는 용어가 거슬렸던지 국악계의 ‘뽕짝 왜색론’은 다분히 감정적이었고 논리가 정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계의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일본 엔카 음계는 근대 메이지 유신시대의 일본이 서구 문화를 수용하면서 생성된 것이지, 일본 고유의 음계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무튼 논란은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보다 10년이나 앞선 1970년대 일본에서도 ‘엔카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엔카의 뿌리는 조선이다’라는 폭탄 선언이 나온 것이다. 일본 대중음악계를 뒤흔들어 놓은 그 돌출 발언의 주인공 또한 1920년대 이후 쇼와(昭和)시대 ‘일본 엔카의 천황’으로 추앙을 받던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여서 충격이 더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 

여기서 고가 마사오의 삶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그는 1910년대에 조선으로 건너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일본인 학교인 선린상고를 졸업했다. 그래서 자신이 성장한 지역인 경기도 민요와 우리 가락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고가 마사오의 ‘중대 발언’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고가 마사오가 한국인들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에 굴복한 심리적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을까’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일본 엔카의 대명사였던 그는 쇼와시대 최고의 히트곡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涙か溜息か)를 작곡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보다는 식민지 조선의 인기 가요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한 박시춘의 음악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와 <애수의 소야곡>은 동시대인 1930년대에 작곡한 같은 트로트곡이지만 수준 차이가 있다. 주제 전개와 악곡의 풍부함에 있어서 <애수의 소야곡>이 단연 우월한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음악평론가는 중학생과 대학생이 만든 작품의 차별성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었다. 1950~1960년대 일본 엔카의 여왕이었던 미소라 히바리 또한 한국 혈통이었던 것이다.  

불세출의 엔카 스타 미소라 히바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일본 대중가요계를 풍미한 엔카의 스타들이나 뛰어난 작곡가의 상당수가 한국계였다고 한다. 고가 마사오는 이같이 일본의 엔카 음악계를 사실상 조선인이 지배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복잡한 심리적 혼란 속에서 엔카야말로 일본인보다 한국인에게 더 어울리는 가요 장르라는 것을 숨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트로트는 한국인의 감수성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일찍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간파했던 것처럼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감정의 증폭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장된 감성을 표출하기 마련인 트로트 음악은 감정을 자제하는 일본의 미학보다는 농현(弄絃)과 요성(搖聲)의 진폭이 큰 한국인의 흥취에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일본 샤미센과 한국 가야금 연주에서도 드러나는 차이이다.

그렇지만 트로트는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들어온 엔카의 한국식 버전이다. 중요한 것은 트로트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의 서민 정서로 정착되었고, 그 음악적 완성도가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이다. 트로트가 우리 전통음악이라고 억지로 우길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왜색 시비에 휘둘릴 까닭도 없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일본을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 아닐까.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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