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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3> 4월, 꽃과 잎으로 열리는 새 세상

꽃들이 만발하니 곳곳이 꽃의 동산
새잎들 자라나니 온 누리 잎의 천하
4월엔 꽃과 잎으로 새 세상이 열리네
한양경제 2024-04-04 14:09:10
4월1일 여의도 공원. 오른 쪽의 야광나무는 꽃보다 잎을, 가운데의 오얏나무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웠고, 왼쪽의 벚나무는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려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이효성

4월은 한봄이다. 때로 꽃샘추위도 몰려오고, 봄바람이 어지럽게 불기도 하지만, 이미 완연한 봄에 이른 시점으로 온갖 꽃들이 피어나 꽃 천지가 되는 때다. 4월 초순에는 날씨가 맑고 밝다는 ‘청명(淸明)’ 절기가 온다. 청명은 대기에서 한기가 사라지고 날씨가 온화하고 화창하다는 점도 특징적이지만 그보다는 마을마다, 아니 방방곡곡(坊坊曲曲)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많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울긋불긋한 꽃동산이 된다는 점이 더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4월에 피는 풀꽃으로는 수선화, 보춘화, 유채꽃, 할미꽃, 제비꽃, 민들레, 씀바귀, 얼레지, 물망초, 크로커스, 튤립, 프리지어, 히아신스, 팬지, 데이지 등이 있다. 나무 꽃들로는 진달래, 영춘화, 개나리, 목련, 박태기, 벚꽃, 명자꽃, 복사꽃, 살구꽃, 오얏꽃, 앵두꽃, 배꽃, 사과꽃, 조팝꽃, 수수꽃다리 등이 있다. 이들 나무꽃들은 거의 동시에 또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명자꽃과 수수꽃다리를 예외로 거의 모두 잎도 나기 전에 온 나무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진달래 축제, 벚꽃 축제 등 전국의 유명한 꽃 축제는 거의 다 청명 절기 동안에 열리고 실제로 이때가 최고의 꽃놀이의 시기이기도 하다. 

꽃은 식물이 생식(生殖)을 하기 위해 피는 것이다. 3월에는 아직 한기가 있기에 소수의 꽃들만이 피지만, 4월에는 보다 더 온화하여 수많은 꽃들이 무더기로 핀다. 꽃이 많이 핀다는 것은 완연한 봄이 되어 한기가 가시고 따뜻해져 생식하기에 좋은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식을 위한 행위가 식물에서는 꽃을 피우는 일로 나타나지만 동물에게는 춘정(春情)의 발동으로 나타난다. 나비나 새를 비롯한 미물들도 흔히 꽃 피는 따뜻한 봄날에 암수가 희롱한다. 인간도 춘정의 발동에서 예외가 아니다. 청춘남녀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남녀가 꽃이 만발한 봄날에 춘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꽃이 만발한 봄날 춘정의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봄바람은 춘정의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정숙한 여인조차도 춘정을 어쩌지 못해 봄을 원망하게 된다.

4월 꽃들이 만발한 곳에는 어김없이 꿀벌들이 나타나 부지런히 꿀을 모은다. 벌은 꽃에서 꿀을 얻고 그 대가로 꽃의 꽃가루받이를 시켜준다. 꽃과 벌은 완벽한 공생관계에 있다. 이 둘은 이러한 공생관계 속에서 함께 진화했다. 그래서 벌이 없으면 꽃이 제대로 꽃가루받이를 할 수 없게 되고 꽃가루받이를 제대로 못하면 식물이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식물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면 열매를 식량으로 하는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의 삶이 어려워진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식물이 씨앗을 생산하지 못해 이듬해 새로운 세대의 식물이 자랄 수 없게 되어 결국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생태계가 파괴된다. 조그만 벌들의 존재가 생태계에서는 이처럼 중요하다.

4월은 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어나는 시절이라는 점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4월은 잎 또한 본격적으로 나서 자라기 시작하는 계절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잎도 없이 꽃부터 먼저 피운 나무들은 꽃이 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잎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을 먼지 피우지 않은 나무들에서도 이 무렵부터 대체로 잎이 나기 시작한다. 땅에서는 풀잎들이 그리고 나무에서는 나뭇잎들이 자라서 지상은 점점 잎들로 메워지기 시작한다. 4월 하순 초에 곡식을 위한 비가 온다는 ‘곡우(穀雨)’ 절기가 오는데 이때는 보리가 익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때라서 비가 와야 하는 때다. 그러나 이때의 비는 풀잎이나 나뭇잎이 자라기 위해서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실제로 이 무렵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풀과 나뭇잎이 부쩍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곡우 어간부터 지상은 초목의 잎들로 서서히 덮여간다. 화려한 꽃들이 사라진 대신 연둣빛 작은 잎들이 땅과 나무를 장식해간다. 그리하여 지상은 점점 더 싱그러운 연녹색 잎들로 메워진다. 이제 세상은 풀잎과 나뭇잎의 천하로 바뀌어 간다. 잎에 의한 세상의 녹화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시에 핀 꽃들보다 훨씬 더 대규모의 역사(役事)가 잎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 지상을 녹화하는 이 대역사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최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개화, 철새 이동, 장마, 지진, 태풍, 홍수, 강설 등 지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그 어떤 일도 이 잎이 자라는 대역사보다 더 큰 규모는 없다. 잎들이 자라서 풀과 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성숙시키는 이 대역사에 의해서 지구의 먹이사슬이 작동되고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초목이 없는 사막에는 풍부한 생태계가 존재하지 못한다.

꽃은 열매를 맺고 씨앗을 생산하여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고, 잎은 풀과 나무의 개체를 키우고 열매를 키워서 동물의 먹이와 식물의 거름이 된다. 생물계의 존재와 순환을 위해서 꽃과 잎의 존재는 참으로 긴요하고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식물들에서 꽃이 피고 잎이 나는 시기가 4월이다. 4월은 결코 “잔인한 달”이 아니라 지상을 생명의 터전으로 만드는 ‘인자한 달’이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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