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의 자연에세이]<3> 4월, 꽃과 잎으로 열리는 새 세상
2024-04-04

꽃이 없는 삭막한 겨울을 보내고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이른 봄이라 할 수 있는 2월 하순 무렵부터 3월에 피는 꽃은 특히 더 반갑고 귀엽고 어여쁘기 그지없다.
아직 다 풀리지도 않은 땅을 뚫고, 심지어는 갑자기 내린 찬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 나는 부채, 복수초, 노루귀, 보춘화, 설강화, 크로커스 등과 함께 봄까치꽃,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수선화, 할미꽃, 히아신스, 유채꽃, 서양민들레, 개보리뺑이, 솜나물, 꽃다지 등의 풀꽃이나 매실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영춘화, 삼지닥나무, 천리향, 히어리, 풍년화, 갯버들, 개암나무….
나무의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난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우선 반갑고 더러는 가녀리고 더러는 화사한 모습에 매혹된다. 이른 봄꽃은 그 색깔과 모양뿐만이 아니라 꽃이 없는 겨울을 보내고 처음으로 맞는다는 사실로도 우리의 마음에 더 큰 감흥을 준다. 무엇이든 처음이거나 새로운 것은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님에도 그렇다. 제주도나 남녘 끝자락에서는 동백이나 매화나 납매나 수선화처럼 늦겨울에도 피는 꽃도 있다. 하지만 중부지방에서는 한겨울 야외에서는 꽃이 피지 못한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날씨가 좀 풀리면 아직 대기가 쌀쌀함에도 봄을 재촉하듯 또는 봄을 반기듯 아름다운 이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 꽃들이니 더 화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더 사랑스럽고 반가운 것이다. 추위 때문에 한동안 피지 못했던 만큼 꽃 가운데서도 일찍 피어나는 봄꽃들이 더 큰 비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 오고 있거나 봄을 맞으려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령사로 흔히 꽃이 꼽힌다. 겨울 끝 무렵부터 언뜻 얼굴을 어루만지는 훈풍, 양지바른 곳의 따뜻한 햇볕, 나뭇가지 끝에 부풀어 오른 잎눈과 꽃눈, 눈 대신 내리는 진눈깨비나 비, 연못의 얼음에 금 가는 소리, 얼어붙었던 냇가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 고드름 녹아떨어지며 부서지는 소리 등 많은 봄의 전령사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봄의 전령사는 역시 꽃이다. 사람들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에서 봄이 오고 있거나 시작되었음을 제대로 깨닫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커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시인들은 특히 더 그러하다.
예를 들어 보자. 영국 시인 존 클레어(John Clare)의 ‘봄의 첫 모습(First sight of spring)’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진홍색 빛깔의 가는 실선 모습의 개암나무의 꽃들이 / 봄을 예고하며, 부푼 봉우리 사이로 엿본다 / 흰 털의 잎이 나오기도 전에.”
진(晉)나라 사섭(謝燮)이라는 시인은 〈조매(早梅: 이른 매화)〉라는 시에서 노래했다.
“봄을 맞으려 일찍 피었네 / 홀로 추위를 개의치 않고(迎春故早發 獨自不疑寒)”
사람들은 흔히 이른 봄꽃을 보고서야 봄이 오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꽃이 피어난 것을 보아야 확실히 봄이 왔다고 생각한다. 꽃이 핀 것을 보지 않으면 봄이 왔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송나라 스님 대익(戴益)은 〈탐춘(探春: 봄 찾기)〉이라는 선시(禪詩)에서 온종일 봄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매실나무 밑을 지나가다 그 가지에 매화가 핀 것을 보고서야 거기에 봄이 와있음을 깨닫는다.
“돌아오며 때마침 매화나무 밑을 지나가는데/봄은 그 가지 끝에 이미 넉넉히 와 있었다네(歸來適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分).”
영국 시인 앨저논 스윈번(Algernon Swinburne)은 아예 봄은 꽃으로 시작된다고 노래했다.
“녹색의 덤불과 피난처에서/꽃송이 송이마다 봄이 시작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봄에 가장 반기는 것도, 그 존재로 봄을 예견하거나 확인하는 것도, 꽃이다. 이에 더해 사람들은 봄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꽃이다. 사람들은 봄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꽃을 연상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봄은 곧 꽃’으로 등치된다. 사람들에게 꽃은 봄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봄에는 꽃이 피어야 진정한 봄이고 거꾸로 봄이 되었어도 꽃이 피지 않으면 진정한 봄이 아닌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한(漢)나라에서 흉노의 왕에게 조공으로 보낸 궁녀 왕소군의 심정을 대신하여 “호지에 꽃이 없으니/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고 읊었다. 꽃이 봄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봄이 되면 기후를 비롯하여 자연에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겨울 동안 피지 못하던 꽃이 피는 현상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 속에서 피어나는 화사한 꽃은 봄의 가장 뚜렷하고 인상적인 물상으로 여겨지고, 봄은 꽃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실제로 봄에 가장 많은 꽃이 가장 화사하게 피어난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매실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영춘화 등의 1차 나무 꽃들이 막 피어나고 있다. 이들이 질 무렵인 3월 하순부터 2차로 진달래, 개나리, 목련, 명자나무, 벚나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조팝나무 등의 나무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이들 이른 봄의 나무 꽃들은 거의 대부분 잎이 나기 전에 온 나무에 꽃부터 피우기에 그 꽃들이 훨씬 더 화사하게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봄이라고 하면 꽃을 떠올리게 되고 꽃은 아예 봄의 상징이 되었다. 꽃이 피어야 봄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봄을 맞을 수 있게, 아니 봄을 만끽할 수 있게, 꽃이여, 어서 마구마구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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