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대구에서 가수 활동 중에 전쟁이 일어나자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육군 제1훈련소 전속악단인 군예대(軍藝隊)에 소속이 되었던 종군가수 고화성 선생이었다. 이른바 ‘군번 없는 용사들’의 위문공연과 연예활동도 기억해달라는 것이었다.
군예대원들의 공연은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장병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고향을 잃어버린 피란민들을 위로했다. 포탄이 날아오는 전장에서도 웃음과 여흥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총 들지 않은 전사’였다. 한 곡의 노래로 총성의 시름을 달랬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바닷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비바리 하소연이 물결 속에 꺼져가네…’
‘삼다도 소식’은 온 나라가 포연에 휩싸였던 한국전쟁기 제주도에서 탄생한 유행가의 고전(古典)이다. 그러면서 전란의 혼란과는 사뭇 거리가 먼 서정적인 가사와 곡조가 일렁거린다.
노래의 탄생지인 제주도의 서남쪽 끝 모슬포 해안을 닮았다. ‘삼다도’란 바람과 돌과 비바리가 많은 삼다(三多)의 고장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유호의 노랫말에 군예대장이던 박시춘이 구성진 가락을 실어 황금심이 노래했다.
제주도를 노래한 대중가요 중에는 서귀포를 배경으로 한 노래가 가장 많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남인수가 노래한 ‘서귀포 칠십리’가 그 시초이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
조명암의 가사는 서경시(敍景詩)이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았던 서귀포 해안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렸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노래가 탄생하고 유행했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민초(民草)와 같은 대중가요의 생명력이다. 가수 금사향의 ‘임 계신 전선’(1953년)의 창작공간도 모슬포이다.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든 노래가 전란의 한가운데를 위무하는 역설이다. 트로트 가요는 전쟁의 참상과 애환을 대중과 공감하며 재기와 재생의 의지를 복돋우는 역할을 했다.
모슬포는 제주의 또 다른 표상인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격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바람소리를 지닌 곳이다. 그래서인가 모슬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에는 격동과 수난의 현장이기도 했다. 서귀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트로트곡이 있다.
‘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어여쁜 비바리들, 콧노래도 흥겨웁게 미역따고 밀감을 따는…’
전쟁과 혁명을 거쳐 산업화의 기치를 올렸던 197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가수 조미미의 ‘서귀포를 아시나요’도 작사가 정태권이 서귀포를 찾아 느낀 감흥을 노래시로 짓고 작곡가 유성민이 곡을 붙인 것이다.
노래 가사에는 제주도의 향취가 흠뻑 배어있다. 조미미의 목소리에 실린 구성지고 애틋한 민요풍의 노래는 서귀포 홍보에 큰 몫을 하면서 감귤재배가 본격화된 제주도와 서귀포 관광시대를 열었다.
1977년 길옥윤이 작사·작곡하고 제주도 출신의 앳된 가수 혜은이가 부른 ‘감수광’은 제주도의 ‘가시리’(고려가요)이다. ‘감수광’이란 제목 자체가 ‘가세요?’란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이 노래에도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三多島)의 특성을 안고 있다.
2024년 7월 초순에 찾은 모슬포에는 여자보다 바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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