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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전쟁가요(4)-전쟁의 참상 

‘단장의 미아리고개’ 여인의 피울음 넘은
겨레의 호곡성…전쟁참상 생생하게 그려
한양경제 2025-07-02 10:26:45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고개’.  

이해연이 부른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작사가 반야월이 직접 겪은 피란가요이자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그린 전쟁가요이다. 그것은 남편을 빼앗긴 여인의 피울음을 넘어선 겨레의 호곡성이었다.  ‘화약 연기 앞을 가려’ ‘철사줄로 두손 꽁꽁’ ‘맨발로 절며절며’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전쟁의 참혹성과 남편 잃은 여인의 사무친 그리움을 이토록 곡진하게 표현한 가요가 또 있을까. 작사가 반야월은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서사와 서정을 미아리고개에 압축하는 문학성을 발휘했다.  

6·25 전쟁은 발발 사흘만에 서울이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미처 피란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의용군에 강제 편입돼 전선의 총알받이로 스러져갔다. 숱한 지식인과 문인예술가들이 북으로 끌려갔으며, 좌익 분자와 퇴각하는 인민군에게 처형당하기도 했다. 서울의 동북 방면 주요 교통로였던 미아리고개는 치열한 격전지이자 납북 인사들이 북으로 끌려간 상징적 공간이었다.  

인공치하의 서울은 공포와 굶주림의 세월이었다. 작사가 반야월의 비극적인 가족사도 미아리고개에서 벌어졌다. 국군의 북진으로 9·28 서울 수복이 되자 반야월은 미처 피란을 하지 못했던 처자식을 찾아 미아리의 집으로 달려갔지만, 어린 딸이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난 뒤였다. 아내는 죽 한그릇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숨진 아이를 호미로 땅을 파고 포연 속에 묻었다고 통곡을 했다.  

창자가 끊어지는(斷腸) 아픔을 머금고 지내던 반야월은 전쟁이 끝난 후 그 쓰라린 심정을 가사로 적었다. 가슴 아픈 개인의 부정(父情)을 겨레의 보편적인 슬픔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화약 연기 자욱한 전장의 참상은 물론 철사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남편과 여인의 피눈물을 구구절절한 언어와 처연한 멜로디로 그려낸 전쟁가요의 명작이다. 미아리는 그렇게 전쟁의 비극을 웅변하는 상징적인 고개가 됐다. 

‘당신이 주신 선물 가슴에 안고서,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둠을 걸어가오, 저 멀리 니콜라에 종소리 처량한데, 부엉새 우지 마라 가슴 아프다’. ‘미사의 노래’는 일제강점기 망국의 설움을 토로한 '꿈꾸는 백마강'과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 등으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른 이인권이 작사‧작곡한 노래이다. 6·25 전쟁기에 제목조차 특별한 ‘미사의 노래’가 나온 것은 그만한 사연이 있다.  

전쟁이 터지자 대구로 피란을 내려온 이인권은 계산성당 인근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친구인 이병주가 운영하는 오리엔트레코드사에 드나들며 박시춘, 이재호, 강사랑, 손로원 등 당대의 가요계 명사들과 교유하는 게 그나마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부가 함께 위문공연을 나갔다가 공연장에 폭탄이 날아들면서 아내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청천벽력같은 일을 당하고 말았다. 

이인권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절망감과 죄책감으로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방황하다가 계산성당에 나가게 되면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미사의 노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천국에서의 영면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도 그렇다. 포탄이 작열하는 전쟁터의 참상은 아니지만 전란이 파생한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눅진하게 품고 있다. 

조향래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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