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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61>전쟁 가요(6)-전란의 상처

‘꿈에 본 내 고향’ ‘한많은 대동강’ 등 이산의 아픔 담아
실향민들 애달픈 망향가로 피란살이 견뎌내
한양경제 2025-07-17 10:26:58
대중가요는 시대 감성의 반영이다. 

전쟁이 끝나도 그치지 않는 실향민들의 눈물과 이산(離散)의 아픔은 새로운 망향(望鄕)의 노래를 낳았다. 특히 전란에 휩쓸려 고향을 잃고 남으로 내려와 피란살이의 고달픔을 견뎌냈던 이북 월남민들의 절망감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착화 된 분단의 장벽을 끝내 넘어가 보지도 못한 채 애달픈 망향가를 부르며 영원한 유랑자로 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꿈에 본 내 고향’은 노래를 부른 가수 한정무도 음반을 제작 발표한 한복남도 모두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가 타향을 떠도는 처량한 신세의 탄식과 헤어진 가족을 그리는 애틋한 정한이 더욱 짙게 배어있다.  

‘꿈에 본 내 고향’은 안타깝게도 한정무가 부른 처음이자 마지막 망향가가 되어 버렸다. 둥근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한 잔의 술을 들이키며 고향 산천을 떠올리곤 했던 한정무.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노래를 내놓은 지 10년도 못되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무정한 세월만 보내다가 타향에서 나그네의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많은 대동강아’. 휴전 5년 뒤인 1958년에 손인호가 부른 ‘한많은 대동강’도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는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절절한 망향가였다. 

한복남이 작곡한 이 노래도 작사가 야인초와 가수 손인호 모두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민이어서 그 감성이 더 각별했다. 노래는 북녘 고향의 대명사이자 향수의 상징적 공간인 대동강을 등장시키며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망향의식을 일깨웠다. 전쟁이 끝나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속절없이 그리워하면서 실향민들은 무정한 세월따라 사위어갔다. ‘한많은 대동강’은 그 간절한 심사의 응축이었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동명의 영화 주제가이기도 했던 ‘과거를 묻지 마세요’ 또한 노래를 부른 가수 나애심과 작곡가 전오승 그리고 작사가 정성수 모두가 전쟁 중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었다.  

2절 가사 그대로 그 무슨 얄궂은 운명이던가. 남북 분단과 전쟁의 후유증은 실향민들에게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들이 노래가 되고 영화가 되었던 것이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겪어야 했던 대중의 고난과 상흔을 대변했다.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았던 사람들은 인공치하에서의 어쩔 수 없었던 부역이 몹쓸 과거가 되어 오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전쟁과 이념이 조장한 적대감을 떨치고 월남민이란 곱잖은 시선도 버리고 평화의 종을 울리고 싶었다. 투박한 질감이 묻어있는 나애심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실은 새로운 선율도 그런 소망을 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휴전선의 장벽은 여전히 드높고 남북이 겨눈 총구에는 아직도 살기가 어려있다. 한반도의 동서남북은 그때나 지금이나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의 희망을 외면하고 있다. 


조향래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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