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의 ‘피리 불던 모녀고개’는 1962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강찬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무룡, 이민자, 엄앵란 등 당대의 명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는 개봉과 함께 10만여 관객을 돌파한 히트작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시부모의 완강한 반대에도 명문가의 외아들인 의사와 결혼한 시골 출신 여인이 연구 과로로 남편이 졸지에 세상을 떠나게 되자 미운털이 박히면서 시집살이가 더욱 혹독해졌다. 모진 학대를 참을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목숨보다 소중한 딸아이였다. 하지만 여인은 딸과 함께 기어이 시댁에서 쫒겨나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데 어느 날 딸마저 병으로 위독한 지경이 되었다.
여인은 그래서 모녀(母女)의 인연을 끊는 조건으로 아이를 데려가서 치료를 해주겠다는 시부모의 의견에 동의를 하고 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딸은 권위있는 신장이식 전문의가 되었고 여인은 우연한 기회에 그 병원에서 식당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연구 수행의 시험수술 대상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딸에게 수술을 자청한다.
수술이 끝날 무렵에야 담당 의사인 딸은 그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온전한 가정이 드물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가부장적 유교 질서가 엄존하던 당시에는 이런 신파극이 대중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피리 불던 모녀고개’는 1936년 ‘알뜰한 당신’으로 스타가 된 가수 황금심의 해방 후 제2의 황금기를 장식한 노래이기도 했다.
어쩌면 1957년 발표된 가수 최숙자의 ‘모녀기타’가 모녀의 애환을 그린 신파조의 마중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진구 작사, 손목인 작곡의 ‘모녀기타’도 1964년 영화로 거듭나면서 인기를 다시 한번 실증했다. 역시 강찬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이민자 신영균 태현실 김희갑 황해 양훈 허장강 남일해 등이 출연했다. 영화의 줄거리도 ‘피리 불던 모녀고개’와 유사하다.
악극단 가수인 여주인공은 남편이 징용에 끌려가면서 딸과 함께 술집 등을 전전하며 고달픈 삶을 이어간다. 엄마는 기타를 치고 딸은 노래를 불러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부잣집 생일파티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해방 후 사업가로 성공한 남편의 새 가정이었다. 엄마는 딸을 남편에게 맡기고 홀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옛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어느날 공연 도중 딸을 발견한 엄마가 노래를 중단하는 바람에 관객들의 야유를 받고 있었는데, 딸이 무대로 뛰어올라가 엄마에게 기타를 치게 하고 모녀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다. 최숙자의 애절한 목소리에 실린 모녀의 가슴 아픈 엘레지는 관객들의 가슴을 적셨다. ‘모녀기타’에 빙의라도 된 듯 저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숙자는 이미자와도 특별한 사연을 지녔다. 가수 활동을 중단했던 시절 이미자의 도움을 받았는데, 국민적 애창곡이 되었던 ‘동백 아가씨’를 이미자에게 넘겨주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미자는 그렇게 가요계의 여왕이 되었지만, 이혼과 더불어 첫딸인 가수 정재은과는 남남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이미자와 정재은 두 모녀 가수의 엇갈린 여정은 또 무슨 ‘모녀고개’이자 ‘모녀기타’인 것일까.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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