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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의 포토에세이] 운무에 사로집힌 안동 월영교

한양경제 2024-11-03 12:38:02
이일화 

안동이라 하면 흔히 예향이라 말하고, 도산서원의 퇴계 이황 선생을 생각하며, 영국 국왕이 방문했던 서애 유성용 선생의 하회마을을 생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 선생의 생가 임청각 군자정을 들기도 한다. 안동권씨, 안동김씨 유림을 생각하는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낙동강 두 줄기가 만나 시내를 관통하는 안동에는 댐이 두 개다. 하나는 안동댐이요, 하나는 임하댐이다. 내가 초등(국민)학교 3학년 시절,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아름답던 마을과 기암절벽이 모두 물에 잠겼다. 임하댐으로 수몰된 외가가 임동면 내였는데, 임하댐에 수몰된 지구는 안동댐에 수몰된 지역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내게는 종가인 임청각 군자정에서 종친들이 모이는 이야기보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월곡면(지금은 와룡면)에서 자랐던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을 졸졸졸 따라 지나다니며 보았던 기암괴석과 절경들, 산굽이를 돌며 드러나는 강물과 산을 안고 선 아름다운 마을들, 낙동강을 따라 이루는 맑은 모래사장들, 산판을 하고 소나무를 철 줄에 달아 강물에 내려보내는 소리, 낙동강의 뗏목들. 아버지의 등에 업혀 안동 시내를 오가던 신작로가 생각난다. 강가에 있던 초등학교 선생님과 함께 낙동강에서 고기를 잡던 추억, 강가의 좁은 길을 따라 떠나면, 어찌 그리 아름다운 절경들이 많았던지.

그중에 하나 월영대(月映臺)라는 글자만 남아 지금 그곳이 기억되고 있지만, 우리 또래들은 알 수 없지만, 수몰되기 전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선배들은 당시 ‘달 그림자 지는 다리’라고 일컫는 ‘월영교(月映橋)’와 ‘월영대’라는 누각이 함께 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월곡면에서는 학생들이 절강이라는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지만, 모두 안동댐을 만들면서 추억도 수몰되고 말았다. 

이일화 

안동댐이 만들어지고 난 뒤, 댐 아래에 남은 전력으로 물을 다시 퍼 올리는 역조정지가 만들어졌다. 그 호수 안에 만든 다리의 이름을 공모하여 ‘월영교’라는 이름이 선정되어 댐 아래 유원지가 된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게 했다. 월영교란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하여 확정되었다. 

가을이 되면 일교차가 심해지고, 안동댐 아래의 역조정지 호수도 안개를 일으킨다. 흐리며 비가 오는 날에도 운무가 낀다. 월영교에 끼는 운무를 보고 있노라면, 운무가 낀 환상 속에 옛 추억이 다시 되 살아나곤 한다. 저 다리를 건너면 고향이 다시 걸어 나올까? 월영교를 걷는 이유가 옛 고향의 추억이 다시 서리기 때문이다. 누가 월영교에 서린 이야기를 잘 읊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득한 고향의 그 마을 이름까지, 월곡면의 미질, 도곡, 돛질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전문의 의사 선생님이신 바쁜 선배에게 가서 조르는 이유이다. 


이일화 사진작가 프로필

 ▷1963 경북 안동 출생
 ▷한전갤러리(2023), 아리수갤러리(2021) 등 단독 사진 전시회 개최
 ▷그의 사진 작품은 빛이 그려내는 창조 세계와 서정적인 일상을 주제로 한 사진들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의 사진 작품은 ‘디지털 아트 픽쳐(Digital Art Picture)’라고 하는 사진예술의 새로운 장르로,
   이 사진들은 그의 작품 사진집 ‘빛의 소리(Sounds of Light)’에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사계절과 소소한 일상을 담은 포토에세이 ‘사랑 그리고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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