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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31>트로트 4인방(2)-송대관 태진아

한양경제 2024-11-22 10:54:39
‘네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내려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쿵짝 쿵짜짜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1998년 오십이 넘어 발표한 송대관의 히트곡 '네박자'는 마치 가수 자신의 인생을 노래한 듯하다. 

송대관은 할아버지가 3.1운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6.25 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 성장했다. 1975년 국민가요 ‘해뜰날’로 전성기를 누리며 많은 돈도 벌어봤고 치명적인 사기를 당하는 연극같은 곡절을 겪었다. 그래서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라는 노래를 가슴으로 부르는 것이다. 송대관의 목소리에 과장이 없는 푸근함에 배어있다. 달관의 정서가 스며있다. 

살아보니 인생이 뭐 별거 있던가. 갑남을녀의 삶이란 그렇고 그런 것이다. 부귀영화도 낙화유수(落花流水)일 따름이다. ‘네박자’는 그같은 인생철학을 흥겹게 풍자한다. 쉬운 박자와 노랫말이 송대관 노래의 특징이다. ‘차표 한 장’ ‘고향이 남쪽이랬지’도 그렇다.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다. ‘네박자’의 제목은 원래 ‘뽕짝’이었는데 송대관의 건의로 ‘네박자’로 바꿨다고 한다. 

트로트 부활의 시대에 부응하고 4분의 4박자 리듬을 강조한 송대관의 직관력으로 ‘네박자’는 경박한 분위기를 좀더 탈피하며 온국민이 부담없이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송대관은 태진아와는 가수로서 경쟁하면서도 상생하는 관계이다. 두 사람이 명콤비를 이루며 무대에 많이 출연하면서 팬들이 ‘환상의 트로트 듀오’로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트로트 스타의 인생도 칠십 고개를 훌쩍 넘어섰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잃어버린 이야긴가 대답하지 않네요,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도 대답없이 고개 숙인 옥경이’. 록과 발라드가 대세이던 1990년대 가요계에 태진아가 부른 ‘옥경이’는 트로트 음악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정통 트로트는 아니었지만 세미 트로트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를 반영하면서 시대변화에 순응한 것이 주효했다. ‘옥경이’는 1970년대 산업화의 물결 속에 더러는 도시의 술집 여종업원으로 흘러들어간 가난한 농어촌 딸들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했다. 나훈아의 미발표곡 ‘고향여자’란 노래의 가사를 일부 수정하고, 미국 이민생활에서 만난 아내(이옥형)의 이름을 제목으로 활용한 것이다.

데뷔 16년만에 처음 히트한 ‘옥경이’는 태진아 인생 역전의 서곡이었다. 그 후 ‘거울도 안보는 여자’ ‘미안 미안해’ ‘노란 손수건’ ‘사모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 ‘동반자’ 등의 노래들이 공전의 히트를 거듭하며 침체된 트로트 가요의 재흥행을 견인했다. ‘동반자’는 아들과 함께 만든 ‘제2의 옥경이’였다.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가수로 성공하기까지 곡절 많았던 삶의 동반자를 노래한 것이다.

태진아는 탁한 듯 애절한 감성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서민들의 사랑과 애환을 담은 노래를 불렀다. 특유의 엄지춤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송대관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태진아는 2010년 경 송대관의 후임으로 대한가수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트로트 4대 천왕’ 가수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대중과 더 가깝게 호흡하는 가수로 트로트 가요계의 새로운 신화를 기록했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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