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선도하는 '경제 나침반'

[트로트 르네상스] <32>해외 명작소설의 변주

한양경제 2024-12-06 14:07:34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버린,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얼어붙은 마음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카츄샤’는 러시아 여성의 이름인 ‘예카테리나’의 애칭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명작 소설 ‘부활’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의 이름도 ‘카츄샤’이다. 

‘카츄샤’는 1960년 유두연 감독이 ‘부활’을 번안 각색한 한국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 영화의 주제곡 ‘카츄샤의 노래’를 송민도가 불렀다. 당시에는 대중가요가 영화의 테마가 되고, 영화 주제곡이 히트 가요로 부활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노래도 그랬다. 소설 속의 카츄샤는 귀족의 아들인 네플류도프의 고모집 하녀로 있었는데, 어느날 그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임신을 하면서 집에서 쫓겨난다. 

청순한 소녀에서 매춘부로 전락한 카츄샤는 살인사건 누명까지 쓰고 시베리아 유형지로 끌려가게 되는데, 뒤늦게 자신의 죄를 뉘우친 네플류도프는 카츄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녀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며 시베리아까지 따라간다. 하지만 네플류도프의 진심을 확인한 카츄샤는 떠날 결심을 한다. 네플류도프는 사회의 모순과 종교의 위선을 자각하며 소외된 약자들에게 헌신하는 부활의 길을 찾아 나선다. 

한국인들이 특히 톨스토이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부활’에 주목한 것은 일제강점기 신파극에서 ‘카츄샤’의 처지를 망국민인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김지미와 최무룡이 출연한 영화 ‘카츄샤’의 스토리도 한국적인 색깔을 입혔을 뿐 비슷하다. 다만 유호가 작사하고 이인권이 작곡한 ‘카츄샤의 노래’는 러시아의 국민가요이자 제2차 세계대전(독소전쟁) 당시 군가로 유명했던 ‘카츄사’와는 별개이다. 

영화 '카츄샤'는 1971년 김기덕 감독이 문희와 신성일을 주인공으로 한 컬러 영화로 리메이크했는데, 그때 김부자가 리바이벌한 주제곡이 더 유명해졌다. 이미자가 부른 ‘여자의 일생’도 외국 소설이 원작이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다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은 꿈 많던 귀족 여인 잔느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인생의 좌절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수작이다. 남편의 냉대와 외도를 목격하면서 모든 기대와 애정을 외아들 폴에게 돌리지만, 그마저 떠나버린다. 옛 하인의 집에 의탁한 잔느에게 남은 것은 어미를 모르는 폴의 딸 뿐이었다. 잔느의 애달픈 삶은 유교문화 시대의 한국 여인상을 떠올린다. 

‘여자의 일생’은 1968년 신상옥 감독이 모파상의 소설을 한국적 감수성에 맞게 각색한 영화의 제목이었고, 이미자가 부른 영화의 주제곡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시대 여성들의 삶이란 그렇게 힘겨운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방탕한 삶과 몰락하는 가문을 지켜보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여자의 일생. 그것은 근현대사의 암담한 터널을 허덕이며 지나온 우리 할머니들이 삶이기도 했다. 

유교적인 관념이 건재하던 1960년대는 집안과 가족을 위한 여성의 인내와 희생이 아직도 전통적인 미덕으로 강제되던 시대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던’ 여성의 삶이 실제하던 세월이었다. 모파상의 소설이 한국적인 영화와 노래로 부활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수 이미자의 삶도 그랬지만, 한국적 여인의 비극미(悲劇美)가 프랑스 여인의 생애와는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3년 뒤 주택 공급난 닥치나

3년 뒤 주택 공급난 닥치나

향후 2~3년내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난 영향으로 집값 상승 우려가 있다고 한다. 특히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을 이어서 시행

DATA STORY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