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총성이 울리기 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심수봉의 가요는 금지곡이 되고 가수 활동도 정지되는 고난의 세월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듬해 등장한 신군부 정권에 의해서 방송출연 금지는 물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노래는 묘한 예감과 탄식을 시사하는 정치적 혐의를 뒤집어 쓰면서 가수 자신도 ‘그때 그 사람’이 되어야 했다.
데뷔곡이 인생사 회한의 서곡이 된 것이다. 20대 초반의 여대생 가수 심수봉은 그렇게 상당 기간 가요계에서 멀어지면서 대학가요제 출신의 신데렐라 이미지도 시들고 말았다. 은둔생활을 하던 심수봉이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거나 무속인이 되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잘못된 시절 인연으로 인해 가수의 청순한 매력과 가요의 음악적인 가치마저 퇴색하거나 왜곡되고 만 것이다.
심수봉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노래 속의 ‘그때 그 사람’이 나훈아였음을 고백했다. 가수 지망생 시절 애써 도와주면서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실까지 찾아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준 나훈아에 대한 연가(戀歌)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7080 세대는 발라드가 가미된 세미 트로트의 신선한 화음과 영혼을 울리는 듯한 애절한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노래가 머금고 있는 시대적인 감성 때문이기도 하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 할 그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 ‘허공’을 타이틀곡으로 수록한 조용필의 8집 앨범이 나온 1980년대 중반은 한국 사회에 민주화의 열망이 드높던 시기였다. '허공'은 그 시절의 가요이다.
‘허공’은 당시 암울했던 시대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가수 자신의 음악적인 실험과 변화를 추구한 곡이었다. 노래는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유신정권이 무너지면서 다가선 듯했던 '서울의 봄'이 신군부의 쿠데타로 좌절된 안타까움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역사적 굴곡과 사회적 분위기를 담으면서 노래는 정서의 깊이를 더하며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렸는데도 신군부의 등장으로 민주화의 꿈이 물거품이 되자 대중음악가 정풍송은 허망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통곡하듯 가사를 쓰고 선율을 그리는데 ‘허공’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라는 가사도 원래는 ‘너무나도 멀어진 민주’였다. 사전 검열을 피하기 위해 ‘민주’를 ‘그대’로 바꾸면서 시대가요를 사랑노래로 바꾼 것이다.
'허공'의 가사는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에 대한 울분을 토해낸다. 그리고 ‘슬픈 옛 이야기’와 ‘잊어야 할 약속’에 대한 회한을 당시의 사회적인 정서와 개인적인 감정으로 절묘하게 아울렀다. 그래서 ‘허공’은 사랑타령이 아니다. ‘허공’(虛空)이란 제목의 의미 그대로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시사하며 조용필의 트로트곡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명곡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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