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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34> 모녀(母女)의 애환(2)

‘칠갑산’, 화전민 모녀의 고단한 삶 묘사
불만과 푸념이 공존하는 한국적 모녀 관계
‘트로트 여왕’ 이미자 모녀의 60년 만 재회
한양경제 2025-01-02 13:15:03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주병선이 부른 ‘칠갑산’은 화전민 모녀의 고단한 삶을 묘사했다. 산비탈 화전(火田)을 일구며 홀로 키운 어린 딸을 먼 마을로 시집 보내는 어미의 눈물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딸의 속울음이 애달프다. 

‘칠갑산’은 충남 부여 출신 작사·작곡가 조운파의 작품이다. 1978년 가을, 고향에 다녀오는 완행버스 차창 밖으로 칠갑산 자락에서 밭을 매는 화전민 아낙네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다 간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가면서 그렁그렁한 눈물 속에 노래의 선율과 가사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칠갑산’에는 그래서 가난한 시절 우리 한국인의 고난과 설움이 눅진하게 배어있다. 

‘칠갑산’은 모녀의 애환을 넘어 질박한 정한이 어린 한국인 모두의 아리랑 고개로 대중의 가슴에 선연하게 다가선 것이다. ‘신은 모든 딸들과 함께할 수 없어 친정엄마를 보냈다’는 서양 속담도 있지만, 한국의 엄마와 딸은 그 고유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너 때문에 이러고 산다’는 엄마의 푸념과 ‘엄마 때문에 못 산다’는 딸의 불만이 공존하는 모녀의 관계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표현이다. 

연예인 모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만 세상사 빛이 강할수록 그늘도 짙기 마련인 것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인기 가수의 무대 뒤편에는 남모르는 시련과 아픔이 뒤따르기도 한다. 말 못할 사연도 있는 것이다. 모녀 가수 이미자와 정재은의 삶도 시린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미자는 ‘동백 아가씨’의 대박으로 엘레지의 여왕으로 등극했지만, 슬픈 가족사를 안고 살았다.

전 남편과의 이혼과 더불어 첫 딸인 정재은과는 떨어져 살아야 하는 비극적인 엄마가 되고 말았다. 재혼과 함께 유교적인 가풍의 새 가정에 충실해야 했겠지만, 긴 세월 딸을 외면한 채 남남으로 살아온 이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딸 정재은도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게 되면서 신산한 삶의 질곡에 허덕이곤 했다. 쓰라린 인생길은 애달픈 사모곡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의 자질을 물려받아 가수가 되었고, ‘이미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정작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지금껏 세 번 만난 게 전부였다고 한다. 그것도 공항 등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어머니 이미자와 한 무대에 서 보는 게 꿈이었지만, 어머니께 누가 될까 봐 주로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활동을 했다. 

‘서글프게 해가 지는 저녁 노을을, 피눈물로 적시면서 산을 넘었소, 어머니가 퉁겨주는 기타 소리에, 그 노래를 불며 불며 뜨내기 평생, 모녀기타가 모녀기타가 울며 갑니다.’ 

최숙자가 모녀의 애환을 노래한 신파조의 트로트곡 ‘모녀기타’ 2절 가사는 이미자 정재은 모녀의 삶에 대한 데자뷔였을까. 최숙자가 취입할 뻔했던 ‘동백 아가씨’를 이미자가 불렀고 그때 딸 정재은이 뱃속에 있었다. 

두 모녀 가수의 어긋난 여정은 이미자의 데뷔 65주년 그리고 딸 정재은의 데뷔 25주년을 맞이하는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하나가 되었다. 6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이루어진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재회였다. 신주쿠의 호텔 4층 연회장에서 열린 ‘정재은 이미자 디너쇼’에는 한‧일의 연예계 인사와 일본의 전 총리까지 참석한 가운데 모녀의 감동적인 첫 무대를 연출했다. ‘모녀기타’의 완성이었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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