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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36> 귀거래사(歸去來辭)

한양경제 2025-01-16 10:58:34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전쟁의 폐허와 도시 생활의 좌절에서 파생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6.25전쟁 피란시절 부산에서 탄생한 박재홍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전후의 혼란 속에 도시에서 좌충우돌 살아가던 사람들의 망향(望鄕) 의식을 노래했다. 슬픈 정조가 아닌 비교적 경쾌한 리듬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의 고단한 삶에 지친 대중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고향의 흙냄새 속에서 소박한 삶을 일구어 나가고 싶었던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역시 박재홍이 부른 ‘유정천리’는 1959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영화는 시골 생활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한 가족이 온갖 풍파를 겪은 후 결국은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귀거래사의 영화와 대중가요적 변주이다.

‘유정천리’의 노랫말 또한 영화의 줄거리처럼 전후 사회의 혼란과 민초의 고달픈 삶이 투영되어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폐하고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이웃간에 따뜻한 인정이 남아있는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심리의 반영이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염증과 혐오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전란이나 혼란이 가중될수록 귀향(歸鄕)의 모티브는 더 강하게 작동하기 마련이다.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온 사나이는, 구름 머무는 고향땅에서 너와 함께 살리라’. 1960년대 후반의 노래인 ‘너와 나의 고향’은 고향을 소재로 한 이촌향도의 슬픔과 도시인들의 원초적인 귀향 욕구를 토로한 나훈아 노래의 마침표 같은 곡이다. 너와 내가 오손도손 살아갈 곳은 고향밖에 없다는 귀거래사의 가요이다. 

‘너와 나의 고향’은 타관을 떠돌며 얻은 상처를 쓸어내리며 고향으로 돌아가 알뜰살뜰 함께 살기를 희망한다. 무정한 도시와 무심한 객지를 전전하며 심신이 멍들고 지친 사나이가 정든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던 여인과 행복한 삶을 꿈꾸는 노래인 것이다.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애틋하게 피어난 망향가의 귀결일 수도 있다. 귀향의 서정이란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멀리 찾아서, 휘돌아 감은 그 세월이 얼마이더냐, 물설고 낯설은 어느 하늘 아래, 빈 배로 나 서있구나, 채워라 그 욕심 더해가는, 이 세상이 싫어 싫더라, 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련다,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아~ 어머니 품속 같은 그곳, 회룡포로 돌아가련다....’. ‘회룡포’는 경북 예천의 내성천이 휘돌아 흐르는 물길에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그 ‘회룡포’가 21C 트로트 가요 속에 들어와 고향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김소월 시인의 강변이고, 안도현 시인의 내성천 은모래밭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열풍에 떠밀려 낯선 도시인으로 고달프게 살아온 대중의 잠재된 회귀본능 감성이 ‘회룡포’로 부활한 것이다. 강민주의 서러움 넘실거리는 목청이 황혼의 언저리에 빈배로 선 듯한 수구초심의 나그네 심사를 온통 흔들어놓는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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