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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41> 화류계 여성의 눈물

한양경제 2025-02-20 10:10:17
6.25 전쟁으로 인한 가족 해체와 미군의 주둔은 윤락 여성을 파생시켰다. 가난해서 무작정 도회지로 나온 농촌의 딸들과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전쟁 미망인들은 식모살이를 하거나 사창가로 휩쓸려가기도 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으며, 이렇다 할 기술조차 없는 게 죄였다. 미군기지 주변의 유흥가에는 이른바 ‘유엔마담’과 ‘양공주’의 숫자가 늘어났다. 1950,60년대의 시린 풍경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경제성장의 여파로 술집과 음식점 그리고 숙박업소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매춘의 산업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널뛰기 하는 경기 덕분에 졸부가 된 사람들이 유흥업소를 즐겨 찾고, 그곳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문화가 기업의 관행이 되면서 향락산업이 부상했다. 서울의 강남개발이 후끈해진 1980년대 들어서는 요정과 룸살롱, 카바레, 안마시술소 등이 번성했다. 

대중가요가 화류계 여성의 삶을 풍자한 서곡은 1953년에 나온 ‘에레나가 된 순희’였다. 도시로 나와서 카바레의 무희나 기지촌의 양색시가 된 농촌 여성의 슬픈 사연을 그린 노래였다. ‘순희’라는 이름의 농민의 딸이 겪어야 했던 슬픈 민중사이다. ‘네온가 미쳐나온 도회지 맹세, 허영에 꿈이 섧던 삼년이 못가, 그날 밤 똑같은 정거장에서, 될대로 되어버린 갖고온 짐은, 새파란 삼등 차표 한 장이라오’.

박애경이 부른 ‘밤 열차 그 여자’는 ‘에레나가 된 순희’의 서글픈 귀결 같다. 유흥가에서 술을 팔던 삶에 무슨 성공이 보장되었을까. 남은 것이라고는 삼등 열차 차표 한 장 뿐인 것이다. 1959년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던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본의 아니게 화류계 여성들의 기구한 삶을 떠올리게 했다. 노래의 가사 또한 아픈 과거를 지닌 여인의 넋두리와 회한을 대변한 듯한 뉘앙스를 지녔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는 전란 중에 월남민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몹쓸 곤욕과 아픈 상처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가수 나애심이 ‘한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고 투박하고 허스키한 성음으로 노래한 것이다. 박신자가부른 ‘댄서의 순정’은 카바레 등 유흥가에서 손님과 춤을 추는 댄서의 애환을 그렸다. 오색등불 아래 춤추며 남몰래 눈물 짓는 슬픈 댄서의 순정이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임인데, 꿈 속에서 그린 임인데, 어이 하라고 어이 하라고, 나는 나는 어이 하라고, 대답해주세요 말 좀 하세요, 무어라고 말하리까 무어라고 말하리까, 먼 데서 오신 손님’.

1970년대 조미미가 부른 트로트곡 ‘먼 데서 오신 손님’은 ‘그렇게 애타도록 기다리던 임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나는 어이하라고, 대답 좀 해달라’고 호소한다.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인데, 무엇이 안타까워 기다려지나, 달콤한 그 말씀도 달콤한 그 말씀도, 오실 때는 좋았지만 안 오시면 외로워지는, 안 오시면 외로워지는 아 단골손님 그리워라 단골손님’. ‘단골 손님’도 그렇다.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인데, 무엇이 안타까워 기다려지나’라고 자문한다. 서정성이 농후한 화류계 여성들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노래들이다. 

1960,70년대 이 땅의 대다수 노류장화(路柳墻花)들은 1950년대 중반 김정애의 노래 ‘앵두나무 처녀’에서 등장하는 ‘이쁜이’와 ‘금순이’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바람이 들어, 물동이 호미자루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도망 나온 농촌의 딸들이었다. 홍등가 여성들은 서울 강남의 유흥문화가 무르익던 1980년에는 주현미의 노래 ‘비내리는 영동교’와 ‘신사동 그사람’ 속에서 사랑과 이별의 주인공이 된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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