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63> 베트남 테마곡
2025-07-30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는 통일신라시대인 750년대 이후 조성한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일 것이다. 세속과 극락,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를 상징한다. 세상의 모든 다리는 만남의 가교이면서 이별의 통로이기도 하다. 다리가 지닌 숙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량은 1900년 서양인 기술자들이 가설한 한강철교다.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어젯밤 이슬비에 목메어 우는구나, 떠나간 그 옛 님은 언제나 오나, 기나긴 한강 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나루에 뱃사공 흥겨운 그 옛 노래는, 지금은 어데 갔소 물새만 우는구나, 외로운 나그네는 어데로 갔나, 못 잊을 한강수야 옛 꿈 싣고 흐른다’. 심연옥이 부른 ‘한강’은 북한의 6·25 남침 개시 사흘만에 폭파로 사라진 한강 다리의 비극적 운명이 스며있는 노래다.
당시 피란 행렬속에 있던 가요인 최병호가 지은 절창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그는 한강 다리가 끊어진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아파서, 너무도 서러워서 노랫말에 차마 다리를 넣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6·25전쟁기 대구에서 발표한 가요 ‘한강’에는 교량 폭파의 굉음도 피란민의 아비규환도 없다. 유장한 강물만이 가이없는 정한을 토로하고 있다. 소리 없는 통곡이다.
2023년 기준으로 한강의 다리는 34개다. 프랑스 파리 센강의 32개보다 많다. 이제 한강 다리에는 더 이상 전쟁의 비극이 묻어 있지 않다. 오히려 풍요속에 흥청거리는 가락이 흐른다. 1970년대 말미에 혜은이의 ‘제3한강교’가 시대의 변화를 토로했고,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가 1985년에 히트했다. 1984년 박영민이 부른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이색적인 노래도 있다.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에 가장 많이 등장한 가장 유명한 다리가 부산의 영도다리일 것이다. 영도다리는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지켜본 증인이다. 다리 상판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는 도개교(跳開橋)로 부산의 명물이기도 했지만, 영도다리가 껴안았던 겨레의 수난사는 육중하다. 전란의 와중에는 가족과 흩어진 채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재회를 기약하는 이정표였다.
무작정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언약이 그곳을 이산가족 상봉의 메카로 만들었다. 영도다리는 한국전쟁이 낳은 만남의 장소이면서 망향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했다. 1·4후퇴 이후 우리 대중가요에 영도다리가 숱하게 등장하는 까닭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1·4후퇴 피란민의 비애를 담은 히트곡 ‘굳세어라 금순아’ 2절 가사 때문에 영도다리는 수많은 사연과 애환을 품은 최고 중량의 다리가 됐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서사적 구조는 2014년 개봉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되살아난 적이 있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의 3절 가사에도 영도다리가 등장한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으로 시작하는 ‘외나무 다리’는 1962년 개봉 영화의 주제가였다. 주연 배우인 최무룡이 직접 불러 더욱 유명했던 노래이다. 가수이기도 했던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인권이 작곡한 노래다. 모두가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한 시절을 풍미한 예인들이다. 파란 많았던 세월, 많은 사람들이 대중가요를 통해 시대의 애환을 건너왔다. 가요인 그들 스스로가 험한 세상의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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