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선도하는 '경제 나침반'

[트로트 르네상스] <43> 신민요의 유행과 부활(1) 

한양경제 2025-03-06 14:58:07
일본 유행가에서 유래한 트로트와 달리 신민요는 전통가요에 음악적인 토대를 두고 있다. 전래의 민요 등에서 형식과 내용을 차용해 창작한 자생적 대중가요이다. 그래서 트로트가 외래지향성이었다면, 신민요는 전통지향성이었다. 민요가 가요의 대중화 시대 출현과 더불어 음반에 수록되는 과정에서 과도기적 장르인 신민요가 된 것이다. 때문에 신민요에는 민요적 특성과 유행가적 특성이 공존하고 있다.

‘노들강변 봄 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나 볼까...’ 박부용이 부른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의 ‘노들강변’은 신민요 시대를 개막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트로트와 함께 1930년대를 풍미한 이 노래는 사람들이 창작곡이 아닌 전통민요로 여겼으며,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하는 유서깊은 노래이다. ‘노들강변’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신민요가 선우일선의 ‘조선팔경가’였다.

‘에~ 금강산 일만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한라산 높아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수려한 국토의 찬양으로 일제강점기 민중이 민족의 노래로 자긍심을 지녔던 ‘조선팔경가’는 광복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행할 만큼 귀에 익은 노래이다. 해방 후 ‘대한팔경’으로 제목을 바꾼 가운데 황금심 최숙자 김세레나 등 한 시절을 대표한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부를 정도로 오랜 인기를 누렸다. 

초창기 신민요는 전통 창법에 익숙한 이화자 왕수복 김복희 선우일선 박부용 이은파와 같은 기생 출신 가수들이 주로 불렀다. 1930년대에는 허다한 신민요가 유행했는데, 가수 김정구의 형인 싱어송라이터 김용환 등 남성 가수들까지 합세하며 대표적인 가요 양식으로 자리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민요는 주로 우리 정서와 가락 그리고 향토적 소재를 바탕으로 민족 정체성을 노래했다. 

1950년대 신민요의 부활을 선포한 가수는 황정자였다. ‘살랑춘풍’에 이어 ‘삼다도 소식’ ‘오동동타령’ ‘처녀 뱃사공’ 등으로 신민요 가수의 입지를 굳히며 1960년대 신민요 성황기의 디딤돌을 놓았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바닷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비바리 하소연이 물결 속에 꺼져가네, 음~~ 물결에 꺼져가네’.

황금심 조미미가 뒤따라 불러 크게 히트한 ‘삼다도 소식’은 6.25전쟁기 제주도 모슬포의 풍경을 노래하며 전란의 소용돌이와 후유증에 시달리던 대중의 고난과 상처를 달랬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육군 훈련소가 있던 제주도는 포성과 포연이 없는 비교적 안전지대였다. 돌과 바람과 비바리(아가씨)가 많다는 삼다(三多)의 비경과 서정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연꽃같은 절창이었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오는 밤 낙숫물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동동 뜨는 뱃머리가 오동동이냐, 사공의 뱃노래가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멋쟁이 기생들 장구 소리가, 오동동 오동동 밤을 새우는, 한량님들 밤놀음이 오동동이요’. ‘오동동 타령’은 ‘타령’이라는 제목 그대로 민요풍의 노래이다.

‘오동추야’(梧桐秋夜) 밝은 달‘ ‘동동주 술타령’ ‘궂은 밤 낙숫물 소리’ ‘독수공방 타는 간장’ ‘사공의 뱃노래’ ‘기생의 장구소리’ ‘한량의 밤놀음’ 등 민속적인 어휘들이 ‘오동동’ 하나로 어우러지며 해방 후 신민요 부활을 선언했다. ‘오동동 타령’이야말로 민족의 고유한 흥겨운 가락 속에 스며있는 사무친 아픔과 가이없는 그리움을 노래한 겨레의 한(恨)과 흥(興)의 표출이었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3년 뒤 주택 공급난 닥치나

3년 뒤 주택 공급난 닥치나

향후 2~3년내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난 영향으로 집값 상승 우려가 있다고 한다. 특히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을 이어서 시행

DATA STORY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