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처녀 뱃사공’은 윤부길이 유랑극단을 이끌고 낙동강을 건너던 중 전선에 나간 오빠를 대신해 나룻배를 젓던 20대의 여자 뱃사공의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썼다는 일화가 전한다. 가슴 시리고 또 뭉클한 겨레의 가요이다.
황정자 이후에는 김세레나가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성주풀이’ 등을 열창하며 일약 신민요 가수의 정상에 올랐다. 또한 최정자의 ‘처녀 농군’ ‘창부타령’, 최숙자의 ‘개나리 처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김부자의 ‘달타령’ 등의 신민요가 한시절을 풍미했다. 신민요는 트로트의 비애와 탄식과는 달리 시대적인 설움을 흥겨움으로 풀어내려는 경향이 농후했다. 전통 민요의 창조적 계승이었다.
1968년 김세레나가 부른 국민가요 ‘갑돌이와 갑순이’는 1939년 발표했던 ‘온돌야화’의 재생이었다. 시골 처녀 총각의 순정과 순박한 풍속을 담은 신민요 전형이다. 흥이 있고 사랑과 애수가 깃든 3분의 컨트리 뮤지컬이다. 박초월 명창에게 창법을 배운 김세레나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꽃타령' '까투리사냥' '만고강산' '남원산성' '한오백년' '군밤타령' 등을 멋들어지게 불러 신민요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홀어머니 내 모시고 살아가는 세상인데, 이 몸이 처녀라고 이 몸이 처녀라고 남자 일을 못 하나요...’ 최정자의 ‘처녀농군’은 황토빛 감흥이 넘실거린다. 야무지고 강인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전쟁의 후유증과 산업화의 열풍으로 공동화 된 농촌을 지키는 여성 농민 위안가나 다름없었다. 흥겨운 가락 속에는 부모를 봉양하며 농사에 청춘을 소진해야 했던 슬픈 여성사가 스며있다.
최숙자의 ‘개나리 처녀’도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세월만 늙어가는 농촌 처녀의 애틋한 심사를 노래했다. 역시 향토색 머금은 처녀의 순정을 봄바람과 버들가지에 실은 것이다.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과 눈물은 없었을 것...’이라고 호소하는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도 신민요풍의 트로트곡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슬픈 정조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이월에 뜨는 저 달은 동동주를 먹는 달...’ 김부자의 ‘달타령’은 지금도 한가위 명절이면 소환되는 국민가요이다. 정월인 1월부터 섣달인 12월까지 열두 가지 달의 모습을 한국적인 정서와 풍속에 어울리도록 재미있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1972년에 나온 김부자의 대표곡 ‘달타령’은 신민요의 완결판과도 같았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애란의 인생역전 곡 ‘백세인생’이 대히트를 하며 한동안 신민요의 존재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민요풍의 경쾌한 리듬과 익숙한 형식만으로는 시대 변화에 따른 대중의 다양한 욕구 충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요의 창법인 비음(鼻音)과 꺾기가 트로트에 전이되어 애절함과 비감을 고조시키면서 우리 대중가요에 깊이를 더한 사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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