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전란의 상처를 극복하고 재건의 의지를 다지던 무렵에 트로트 가요도 화사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며 사회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와 ‘빨간 구두 아가씨’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노란색 열풍을 일으킨데 이어, 남일해의 ‘빨간구두 아가씨’가 한국 사회를 빨갛게 덧칠한 것이다. 실제로 노란 셔츠와 빨간 구두가 크게 유행한 것은 물론이다.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이 쏠려, 아~ 야릇한 마음 처음 그껴 본 심정...’ 1961년 발표한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1960년대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대중은 색깔이 있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보다 희망적이고 역동적인 내일을 감지하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노래 제목에서 색채감이 등장한 자체가 과거와는 다른 분명한 파격이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 원곡은 경쾌한 트위스트풍이 아닌 느린 블루스풍 재즈였다고 한다. 그런데 작곡가 손석우가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빠른 템포로 편곡을 했다는 것이다. 판단은 적중했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거울임을 입증한 것이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와 함께 대중가요계에 색깔 붐을 일으킨 노래는 ‘빨간 구두 아가씨’였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 소리 어딜 가시나, 한 번쯤 뒤돌아 볼 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1963년에 나온 매력적인 저음 가수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는 당시 도시 여성들에게 ‘빨간 구두를 신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인식을 전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빨간 구두 품절 현상까지 일어났다는 얘기도 있다.
남일해는 대구 대건고 3학년 때 오리엔트레코드사가 주최한 신인 가수 콩쿠르를 통해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남일해의 대표곡 ‘빨간 구두 아가씨’의 노랫말은 서울의 남산 중턱에 있던 한국방송공사(KBS)에 근무하던 하중희가 지었다. 어느날 출근길에 빨간 구두를 신고 앞서가는 아가씨를 보고 떠오르는 상념을 적어 KBS 경음악단 트럼펫 연주자인 작곡가 김인배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196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적시타였던 ‘빨간 구두 아가씨’는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남일해 특유의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와 경쾌한 스윙풍 리듬의 멜로디가 변화된 시대의 마중물처럼 출렁거렸다. 전쟁의 폐허에서 재생의 깃발을 들어올려야 했던 시절에 대중가요는 노래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더구나 화사하고 강렬한 색채를 지닌 트로트곡이 그랬다.
개인 승용차가 드물던 당시에는 걸어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가는 길에 자주 마주치며 시선을 끄는 아가씨가 있었을 것이다. 은근한 연정을 품고 있지만 말 한마디 붙여보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한 번쯤 뒤돌아 볼 만도 한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무심한 발걸음만 뒤쫒을 수밖에 없었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그런 도회지 대중의 감성까지 대변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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