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남진과 나훈아는 스타일도 캐릭터도 많이 달랐다. 남진이 팝 스타일의 화려한 무대를 연출한 비디오형 가수였다면,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 모드에 꺾기 창법과 차분한 음색으로 청중을 사로잡은 오디오형 가수였다. 남진이 ‘님과 함께’와 같이 밝고 경쾌한 템포가 특징이었다면, 나훈아는 ‘물레방아 도는데’처럼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소환하는 서정적 창법이 특색이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남진은 ‘가슴 아프게’(1967)를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정두수가 작사하고 박춘석이 작곡한 노래였다. 그야말로 ‘남진을 위한, 남진에 의한, 남진의 노래’였다.
남진은 ‘가슴 아프게’의 대유행과 함께 당대의 인기 여배우 남정임과 함께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에 출연하는 행운도 안았다. 남진은 그렇게 준수한 마스크에 연기력도 뛰어난 천부적인 탤런트 기질을 가진 연예인이었다. 1968년 청룡부대에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 후 ‘마음이 고와야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듬해 ‘님과 함께’로 다시 인기 절정에 오르며 방송사의 남자 가수상을 휩쓸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테니까요’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연이어 ‘강촌에 살고 싶네’ ‘님 그리워’를 터트리고 ‘가지 마오’(1971)로 KBS 가요대상을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등 숱한 명곡을 쏟아내며 가요 황제로 등극했다.
싱어송 라이터로 많은 자작곡을 남긴 나훈아는 유려한 가창력으로 애절한 정서적 파동을 일으키며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나훈아는 자긍심이 높은 가객(歌客)이었다. 고위급 인사나 재벌그룹 총수의 초청도 내키지 않으면 거부할 정도였다. 이른바 ‘딴따라’로 부르던 가수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다. 나훈아는 2005년 ‘고장난 벽시계’를 부른 후에는 한동안 칩거에 들어갔다.
남진과 나훈아는 닮은 듯 다르다. 같은 연배로 같은 시기에 데뷔해 침체된 가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목포 출신의 남진은 역동적이고 폭발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반면 부산 출신의 나훈아는 조용하고 애절한 창법을 구사하면서 한맺힌 듯한 고유의 가창으로 정한을 지닌 청중의 감성에 깊이 다가서곤 했다.
남진이 산업화의 희망과 낭만적인 농촌을 표현했다면, 나훈아는 이촌향도의 서러움을 토로했다. 남진은 지금도 방송 출연은 물론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며 공개적인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반면, 나훈아는 콘서트 외에는 공개 활동을 자제하는 신비주의를 지향해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상쟁(相爭)하면서도 상찬(相讚)하는 선의의 경쟁으로 대중가요계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며 가요의 발전을 견인했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