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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51> 작사가 조명암과 박영호

한양경제 2025-05-02 19:25:47
대중가요의 초창기 작품들은 문인들의 작사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의 가요시(歌謠詩)는 상당히 정제된 형식과 적절한 현실 인식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문학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대중가요의 통속성과 상업성을 이유로 곡조와 조화를 이루며 망국의 통한과 유랑의 정한을 달래준 가사의 문학성과 시대적인 역할까지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제시대 가요시의 쌍벽은 조명암과 박영호였다. 

조명암은 충남 아산 출생으로 본명은 조영출이다. 동학 농민군으로 활동하던 부친이 체포되면서 남은 가족이 금강산 건봉사로 들어갔다. 모친이 사찰의 공양주 보살로 일하게 되었고 영출은 삭발을 하고 중련(重連)이란 법명을 받았다. 그때 건봉사에 머물던 만해 한용운 스님이 영출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서울의 보성고보로 유학을 시켰다. 그리고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1934년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영출은 모더니즘 계열의 시작품을 발표하면서 가요시 창작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일제강점기 가장 많은 노랫말을 썼던 그는 조명암을 비롯해 이가실 금운탄 김다인 등 다양한 필명을 사용했다. 조명암은 시인과 작사가 외에도 희곡 작가와 연출가 등으로도 활약한 다재다능한 문화예술인이었다. 그는 주옥같은 명곡의 산실이었다. 

‘알뜰한 당신’ ‘바다의 교향시’ ‘꿈꾸는 백마강’ ‘화류춘몽’ ‘선창’ ‘진주라 천리길’ ‘목포는 항구다’ ‘낙화유수’ ‘신라의 달밤’ ‘고향초’ 등이 조명암의 작품이다. 1940년대 가요 ‘꿈꾸는 백마강’ 2절 가사에서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려‘라는 절창이 나온 것은 고향의 정서와 불교적 경험의 반영이었다. 망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상실의 아픔과 무상한 감회의 문학적 토로였다. 

‘마음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다’란 가사 한 구절에 기생의 순정과 탄식을 오롯이 드러낸 ‘화류춘몽’도 걸작이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친일의 행적도 짙게 남아 있다. 많은 군국가요를 제작했으며 친일 희곡 창작과 연극 공연에도 앞장섰다. 광복 후에는 좌익 문단에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월북의 길을 택했다. 북한에서도 예능을 발휘하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곡절과 훼절이 많은 얼룩진 인생사였다. 

박영호가 지은 수많은 가요시 중에서도 특히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과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의 노랫말은 그야말로 백미(白眉)이다. ‘짝사랑’에서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없는 들국화’라는 구절은 실연의 비가(悲歌)를 통해 망국민의 탄식을 수려한 시어로 은유한 압권이다. 잃어버린 조국을 ‘번지 없는 주막’에 비유한 탁월한 문학적 수사(修辭)도 빼놓을 수 없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밑에 마주 앉아서...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라는 노랫말 또한 일제강점기 유랑민의 방랑의식과 나그네의 애환을 대변한 역작인 것이다. 박영호도 처녀림 불사조 등의 필명으로 수많은 가요시를 발표하여 일제에 신음하던 민족의 시름과 아픔을 달래준 대표적인 작사가였다.

작사가 반야월은 두 사람의 가요시에 대해 “조명암의 작품은 섬세하고 여성적인 경향을 띤 반면 박영호의 작품은 두텁고 선이 굵다”고 평한 적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일제 말기 군국가요를 제작했고, 광복 후 월북을 했다. 친일 작품의 양산과 북한 체제 찬양은 개인의 오욕이자 우리 문학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파란과 격동의 시대, 곡절과 훼절이 많은 굴곡진 인생사였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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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조명암과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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