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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구글의 요구, 안보의 문제로 접근해야

권태훈 기자 2025-05-06 15:57:43

구글이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2011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오는 15일 국토지리정보원은 이에 대한 1차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지도 한 장이 다시 국가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구글이 요청한 대상은 ‘1: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다. 50m 거리가 지도상 1cm로 표현되는 수준으로, 골목길과 기반시설까지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현재 구글은 1:25,000 축척의 공개 지도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 요청이 승인된다면, 구글은 한국 지형에 대한 훨씬 높은 수준의 정밀 정보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지금껏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다. 수도권 방어망, 군사시설, 핵심 인프라가 밀집한 상황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이전하는 것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선 국가 안보의 문제다.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구글에 고정밀 지도를 제공했더라도, 이들 국가와는 안보 환경이 전혀 다르다. 구글이 이를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단순한 형평성 차원으로 접근할 사안은 아니다.

더욱이 구글은 우리 정부가 제시한 ‘국내 서버 구축’ 조건조차 수용하지 않았다. 한국 내 서버를 설치하면 고정 사업장이 생기고, 이에 따라 법인세 납부 의무가 발생한다. 하지만 구글은 이를 회피하고 있다. 현재 구글은 국내에 고정 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는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싱가포르 소재 아시아태평양 본사로 이전되는 구조다. 지난해 구글이 한국에 낸 법인세는 약 240억 원에 불과했으며, 같은 해 네이버는 3,902억 원을 냈다. 국민 세금으로 제작된 고정밀 지도를 이처럼 조세 회피 논란이 있는 다국적 기업에 무상 제공한다는 것이 과연 납득 가능한 일인가.

미국 정부의 외교적 압박도 거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도 반출 불허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며 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를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조짐도 보인다. 산업통상부는 “기술적 우려를 해소하면 구글 지도에 한국이 포함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이지만, 국토교통부는 안보와 데이터 주권 문제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 내 시각도 분명히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어떤 실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확보하게 되면 자율주행 지도의 정확도가 향상된다. 웨이모 기반 무인 택시, 정밀 내비게이션, 실내외 드론 물류 등 다양한 서비스가 국내에도 가능해질 수 있다. 관광·물류·의료·교통약자 지원 등 분야에서 고정밀 공간정보의 활용 가치는 높다.

하지만 이러한 편익은 ‘상호주의’ 원칙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구글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공정한 조세 부담을 지며, 국내 산업과의 상생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협력의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책임 없는 글로벌 기업의 태도로는 납득을 얻기 어렵다.

지도는 기술이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이번 결정은 일개 기업의 편의가 아니라, 국가가 디지털 시대의 영토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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