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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14>의료 개혁과 지대추구

한양경제 2025-08-11 11:07:04
박병윤

“왜 의대 정원 문제는 매번 이렇게 시끄러울까?”
경제학자라면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건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때문이야.”
최근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의료 인력 수급 문제처럼 보이지만, 경제학의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관점에서 보면 구조적 이해충돌의 전형이다. 

‘지대추구행위’는 기업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고 주로 정부 등의 권력을 이용해 타 집단에 대해 진입 장벽을 만들고, 우월한 지위를 선점해 배타적 이익을 독점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대신 정부 규제를 활용해 경쟁사를 시장에서 몰아내려고 로비에 나선다면, 이는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권익 방어에 자원을 쓰는 전형적인 지대추구다.  

또 법조계의 전직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들만이 누리는 전관예우 행위나, 의사 집단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정치적·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모습도 지대추구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대추구현상은 사회 전체의 후생감소와 시장 전체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시장은 ‘공급 제한’이라는 강력한 진입장벽 위에 서 있다. 의사 면허는 법적으로 희소성을 띠며, 이 희소성은 의료 서비스 가격과 의사 소득을 높게 유지하는 힘이 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의사 공급량이 제한되면 시장 균형가격이 상승하고, 이 초과 이익이 곧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가 된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이 지대의 일부를 잠식하는 조치이므로, 기득권 집단의 반발은 자연스럽다. 이때 동원되는 로비, 집단휴진, 여론전은 모두 생산적 투자 대신 지대 방어에 들어가는 비생산적 자원 사용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의료개혁 조치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 이번 정원 확대 정책은 ‘공급 증가→가격 하락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단순한 수요·공급 모형에만 기대었다. 하지만 의료 인력은 ‘동질적 상품’이 아니다. 지역·전문과목별로 수요와 공급이 심각하게 불균형을 보이며, 의료서비스의 생산 기간도 의과대학 6년과 인턴·레지던트를 포함해 상당히 긴 편이다.  

이른바 ‘공급의 비탄력성’이 강한 시장이다. 따라서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방의 필수 의료 공백이 해소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의료 인력의 배치 문제는 가격(의료수가), 근무 환경, 경력 인센티브 같은 제도적 요인과 밀접하다. 수도권 대형병원과 인기과목으로 인력 쏠림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계수입(marginal revenue)이 높은 분야로 자원이 이동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메커니즘 때문이다.  

반대로 지방 응급실이나 산부인과처럼 위험과 노동 강도는 높지만 수익성이 낮은 분야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원만 늘리면, 인력 편중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

이번 의료개혁 실패의 핵심 원인은 ‘단기적 성과주의’에 집착한 점이다. 정부는 장기적 의료 체계 개혁보다는 ‘몇 명 늘렸다’는 성과 지표에 매달렸고, 의사 집단은 ‘사회적 기여’보다 ‘기득권 방어’에 더 많은 자원을 썼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후생(social welfare)’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적 갈등 비용과 정책 신뢰 손실이라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만 커졌다. 

정원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으로 몇 가지를 들어볼 수 있다. 첫째, 지역별·전문과목별 의료 인력 수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한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 둘째, 의료수가 체계를 개편해 필수·지역 의료 분야 종사자에게 합리적 보상과 근무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의사 인력만이 아니라 전문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다층적 의료 인력의 역할을 강화해 전체 공급 능력을 높여야 한다. 넷째, 의과대학 교육과 수련 과정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인력 양성 경로를 제도권 안에 정착시켜야 한다. 

지대추구행위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개혁, 시장 경쟁 강화, 시민의식 향상, 그리고 공정한 정책 설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법으로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전체가 공정성과 생산성 중심의 가치관을 공유해야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의사 집단은 의료 서비스의 질과 범위를 확장해 장기적 신뢰를 얻고, 정부는 의료 인력의 총량과 효율적 배치를 동시에 개선하는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결국 의대 정원 논쟁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라, 경제적 지대를 줄이고 사회 전체 후생을 극대화하는 제도 설계의 문제이다.

박병윤 교수

필자 - 박병윤 박사(경제학) : 현)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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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유리
    최유리 2025-10-08 16:42:21
    의대 정원 문제를 지대추구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 현실적이다. 공급 제한으로 생기는 경제적 지대와 기득권 방어를 위한 로비, 집단휴진 등 비생산적 자원 사용이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키는 구조가 명확히 드러난다. 단순한 정원 확대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고 지역, 전공별 배치, 근무 환경 개선, 다층적 인력 활용 등 장기적 제도 설계가 필수적이다. 결국 해결 여부는 정부와 의료계가 공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하며 협력할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 MIG81
    MIG81 2025-10-05 11:41:44
    도제식 형태로 각 전문의를 양성하는 시스템에서 기피과에 들어가더라도 지도해줄 전공의가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기피과 전공의 숫자만 는다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에도 숫자만으로 싸워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을 봤습니다. 다만 의료 서비스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적합하기는 하나 이를 단순한 제도 개선으로 이뤄질지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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