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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4> ‘창조적 파괴와 성장’

한양경제 2025-10-20 10:48:02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은 필립 아기옹(Philippe Aghion), 피터 하위트(Peter Howitt), 조엘 모키르(Joel Mokyr) 세 명의 교수가 수상했다.  

그들의 공로는 ‘혁신 주도 경제 성장을 설명한 공로’로 집약됐다. 특히, 아기옹과 하위트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이론(The theory of sustained growth through creative destruction)’으로 경제학의 오랜 난제인 장기 성장 동력을 규명했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한 저성장, 불평등, 기후변화 등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는 아기옹이 공저한 저서 ‘창조적 파괴의 힘(The Power of 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됐으며, 노벨상 수상은 이 이론이 경제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과다. 

이번 노벨상 수상의 핵심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가 제시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을 정교한 현대 경제학 이론으로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슘페터는 혁신(Innovation)을 통한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등장해 기존의 산업과 일자리를 파괴하고 대체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자본주의의 본질로 보았다. 하지만 슘페터의 논의는 정식적인 이론 모델이나 실증 분석을 통해 검증되지 못한 채 개념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아기옹과 하위트 교수는 1992년의 기념비적인 연구를 통해 이 개념을 ‘슘페터식 성장이론’이라는 수학적 모델로 구축했다. 이 이론은 경제 성장의 동력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독점적 이윤’을 얻으려는 기대로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내생적’ 과정에서 발생함을 명확히 했다.  

혁신에 성공한 기업이 일시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지만, 곧 더 나은 후발 주자의 등장으로 그 이윤이 사라지는 치열한 경쟁이야말로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인 셈이다. 노벨위원회는 성장이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이 창조적 파괴의 메커니즘을 잃는 순간 경제는 정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들의 이론이 경제학 연구의 지평을 넓혔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아기옹 교수의 연구는 창조적 파괴의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파괴적 결과로 나타날 실업, 불평등, 기득권의 저항 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의 미래가 혁신과 사회적 포용을 얼마나 잘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첫째, 경쟁 정책의 재정립이다. 아기옹은 경쟁 강도와 혁신 수준이 ‘역U자형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즉 경쟁이 너무 낮으면 기득권 기업이 안주하고, 너무 높으면 혁신 이윤이 줄어들어 투자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적절한 수준의 경쟁을 유도해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어제의 혁신가’가 특허나 규제를 악용해 후발 주자를 막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보호’와 ‘재배치’의 균형이다.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재배치 정책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실직 노동자와 같은 혁신의 피해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과 재교육 시스템을 강화하는 보호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아기옹은 이러한 균형을 통해 사회가 혁신의 고통을 흡수하고, 노동력이 새로운 성장 분야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역동성'과 '유럽의 포용성'을 결합한 ‘더 나은 자본주의’ 모델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아기옹 교수의 이론은 고도성장을 멈추고 저성장과 생산성 둔화에 직면한 선진국 및 한국과 같은 중견 국가들에 중요한 정책적 메시지를 던진다. 

단순히 R&D 예산을 늘리는 ‘투자 중심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혁신을 가로막는 기득권의 규제와 낡은 산업 질서를 파괴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의 연구는 친환경 혁신과 불평등 해소 역시 창조적 파괴의 메커니즘을 통해 동시 달성이 가능한 정책 목표임을 보여줌으로써, 미래 경제 정책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혁신이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재확인하며, 그 힘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전 세계적인 논의를 촉발할 전망이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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